열수레의 책읽기

[누가 반 고흐를 죽였나] 우상을 걷어내고 천재를 직시하기

슬슬살살 2014. 3. 18. 23:26

이 책 표지를 얼핏 본 와이프가 한마디 한다. “누가 죽이긴 누가 죽였어. 고흐는 자살했어.” 그렇다. 고흐는 자살했다. 불타는 예술혼을 이기지 못하고 미치광이가 되어 스스로 귀를 자르고 자살했다.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였지만 죽어서는 전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화가중 하나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뻔한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보기에는 너무 거창한 제목을 가졌다. 그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제목이 호기심을 일으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건 없다이 책은 우리가 제목으로 미루어 짐작 할 만한 어떠한 음모론도 제기하지 않는다. 의사이자 화가인 앙리 앙드레 마르땡은 애초부터 의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반 고흐의 정신분석을 하고자 했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과 기록들에서 나타나는 고흐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어 했고 그 결과가 이 책으로 나타났다. 

 

이 책을 꿰뚫고 있는 가장 강한 주장은 반 고흐는 미치지 않았다이다. 끓어오르는 예술혼을 못이겨 광인이 된 천재화가라는 이미지는 온전히 영화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고흐는 광기어린 가난한 천재가 아니었다. 책임감이 강하고 온전한 사고를 하는 재능있는 천대였으며 그다지 궁핍하지도 않았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좋은 화구들을 사용해 그림을 그릴 정도는 되었다. 동생 테오와도 우애 좋은 형제였으며 아버지와의 불화도 없었다. 있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당시 가정에 있을 정도의 불화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반 고흐는 귀를 자르고 광인이 되어 자기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까. 원인은 당시 유행하던 압생트 주라는 술에 있었다. 이 술은 마시는 이를 중독 상태에 빠트리며 간간히 발작을 일으키게 한다. 중독자는 경련과 거품을 무는 등의 등의 일은 없지만 내면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환각과 환청, 착시현상을 동반한다. 의사가 기술한 내용이니 틀림 없을 것이다. 당시의 압생트 주는 지금의 맥주만큼이나 널리 퍼져있어 그 폐해도 엄청났다 한다. 고흐가 천재임은 분명하나 덧붙여진 과장이 너무나 많다. 대부분의 일화들은 사실이 아니며 천재의 우상화를 원하는 대중들이 만들어낸 환각이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압생트 주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천재에 씌워진 우상이 너무 강하면 진짜 천재를 발견할 수 없다. 고흐의 자살이 단순한 알콜중독으로 인한 환각이라 할 지라도 그의 천재성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반 고흐와 그의 그림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다 편안하게 감상할 권리가 있다. 얽혀있는 가쉽을 걷어낼 때 진자 고흐의 그림이 보인다.

 

그의 최후의 순간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대신 종말의 양상을 단순하게 이해하고 그가 최후의 시기에 창작에 몰두하여 천재성을 불태운 후에 더 이상 살아남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그 흥미로운 주제성에도 이 책의 전개는 지루한데, 여기에는 의사라는 저자의 또 다른 직업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이 책의 원제가 <반 고흐의 병>이라는 사실은 애초부터 편안하게 읽힐만한 책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마케팅 차원에서 누가로 시작해서 죽였나로 끝나는 자극적인 타이틀을 뽑아냈지만, 독자는 약오른다.

 

 


누가 반 고흐를 죽였나

저자
앙리 앙드레 마르땡 지음
출판사
아트블루 | 2008-03-1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반 고흐의 생애를 재구성한 책. 의사이자 화가인 저자는 고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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