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잠잠하지만 21세기 초반에는 급 성장하는 중국을 다룬 책들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왔다. 이상하게도 중국을 다룬 책들 대부분이 한국과 일본인들의 글이었다. 서양인들이 쓴 책은 왜인지 인기가 없었다. 아무래도 동양은 동양이 더 잘 알 거라는 이상한 착각 때문이었다. 우리가 서양인들보다 중국을 정확하게 바라본다는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몇 안되는 서양인이 쓴 글이다. 제임스 킹은 스쳐지나듯이 중국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다. 유력 일간지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이제는 베이징에 머물며 사업을 하고 있는, 이른바 중국 ‘통’이다. 우리식으로 하면 이참 정도나 될까? 그렇지만, 이참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각각 한국과 중국을 제2의 고국으로 여기지만, 이참이 파란눈의 한국인이라면, 제임스 킹은 중국을 사랑하는 외국인이다. 이 점이 이 책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무작정 중국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함께 담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경제 전문기자답게 시장경제 원리에 비추어 중국의 비약적인 성장과 서구권의 정지된 경제성장을 비교하는 것이 이 책의 전개 방식이다. 그 중 에서도 핵심은 인구다. 10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중국이 글로벌 시장경제의 한 부분으로 부상하면서 나타나는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중국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격렬하면서도 양극화 돼있다. 이토록 거대하고 싸고 다재다능한 노동력이 그토록 짧은 기간에 글로벌경제에 합류한 사실이 전무후무하다는 사실이 한 극이다. 그렇게 큰 국가가 자연의 뒷받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토록 빨리 성장한 전례도 일찍이 없었다는 사실이 반대 극이다.
21세기의 시작에 시장의 맛을 본 10억의 인구가 태어났다. 한마디로 인류는 갑자기 30% 이상 체중이 불어난 것이다. 평소의 근육(미국과 유럽과 같은)이 잘 버텨 줬지만, 갑자기 늘어난 살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다. 살을 빼거나 빠르게 근육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갑자기’ 등장했으며 그 돌연함에 세계경제는 놀라움과 기대감과 더불어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풍부한 자산을 지니고 있다. 고대 문화, 문학과 예술에서 번득이는 전통, 수천년간 축적돼온 사상가들의 지혜, 엄청난 잠재력, 요리의 맛, 쿵푸 같은 무예, 근면하고 영리한 국민, 상하이 같이 멋진 신도시를 수놓은 마천구, 그리고 귀여운 자이언트 팬더. 그러나 이런 장점들의 반대편에 좋지 않은 이미지들도 있다. 싸구려, 불법복제, 저작권 침해, 노동력 착취, 인권침해, 1989년 천안문사태, 정부의 족벌주의와 부패, 종교 등 영적활동에 대한 박해, 오염된 환경, 분노한 민족주의의 분출, 추방된 달라이라마에 대한 탄압 등이다.
제임스 킹은 중국의 문화와 가치를 사랑한다. 유구한 역사와 강한 프라이드를 존중하며 깊은 문화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반시장정책에는 강한 논조로 비판하는데 일관된 시장주의자의 논리다. 개방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중국이 올바르게 성장한다는 내용인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내용이다. 바로 장하준 교수가 주구장창 주장하던 그 '사다리 걷어차기'인데, 저작권, 저임금, 정부주도하의 계획경제, 대규모 토건 사업들 등 장하준 교수가 주장하는 모든 경제성장요인들이 중국에서 일어났다는 걸 시장주의자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장하준 교수의 논리를 시장주의자가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미래의 핵심 질문은 ‘중국의 성장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라기보다는 ‘세계가 중국의 성장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것인가’이다.
중국이 전 세계의 모든 생산과 소비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이 세상은 중국에 뒤흔들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어찌 됐건 그들은 15억이나 되니까. 재화와 에너지가 무한하다면 두 번째 질문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에너지는 충분하지 못하며 그나마도 중국으로 인해 빠르게 소비되고 있다. 모든 세계인들의 중국의 먹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중국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와 환경정책이 발 빠르게 받혀 줘야 할 것이다. 모든 인민이 미국처럼 경제성장의 단맛을 보지 못한 채 다시 개발기로 접어드는게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카드를 집지 않으면, 세계는 공멸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가 용인하기 어려울 만큼 성장해왔다.
이 책이 쓰여진 2004년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중국은 아직 그대로다. 전 세계의 생산과 소비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화이트 홀처럼 내뿜는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소비하고 있어서 중국의 경제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큰 땅덩어리와 급격하게 늘어난 빈부격차, 너무 많은 인구가 중국의 성장을 더디게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올가미가 있다. 10년전 이 글에서 가장 문제점으로 꼽았던 환경에의 부채다. 중국의 난개발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황폐화시키고 있으며 현재 중국인들의 소비는 인류 전체가 지금까지 소비한 것에 맞먹는 규모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환경과 에너지 정책을 기반으로 한 성장으로 방향타를 돌려야 한다. 중국이 환경부채를 갚지 못하면 결코 미래는 없다. 성장주의 선착순은 끝났고, 안타깝게도 중국은 그 안에 들지 못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개발주의 노선을 걷는다면 이번 선착순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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