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이 직업인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일이나 프로젝트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하나의 구성원이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늘 조연인 사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묵묵히 애쓰시는’ 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조연이라는 걸.
마라톤에서의 페이스메이커가 바로 그런 존재다. 가장 우수한 다른 선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 적어도 이 영화에서의 페이스메이커는 그렇게 그려져 있다. (실제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엘리트 선수들에게는 코치와 같은 존재이고, 아마추어에게는 선생님이 바로 페이스메이커다. 영화에서와 같은 페이스메이커는 말 그대로 가상이다.)
만호(김명민)는 가난한 어린 시절, 달리기로 동생 성호를 가르친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퇴물 마라토너다. 어린 시절부터 페이스메이커로 길러졌기 때문에 누구보다 정확하게 달리지만 30Km 이상은 달리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의 페이스메이킹 능력을 높이 산 박감독에게 발탁되어 런던올림픽의 국가대표로 발탁 되지만 그의 임무는 하나. 마라톤 유망주 윤기의 페이스메이커가 되는 것이다. 그까짓 것 뭐 중요하냐 하지만, 무릎 이상으로 마지막 마라톤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만호는 선택을 해야 한다. 또 한번 남의 들러리만 설 것 인가. 아니면 생애 마지막 만큼은 자기를 위한 러닝을 할 것인가.
페이스 메이커에 대한 왜곡된 정보만 제외한다면 스포츠 휴먼 드라마가 가져야 할 요소는 모두 가지고 있다. 퇴물 선수, 가난, 형제와의 갈등, 대표팀 내에서의 갈등, 미녀 선수의 응원 등등. 그렇지만 그냥 그런 뻔한 전개를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얼까. 마라톤에 대한 무지가 일순위가 아닐까. 42.195Km를 달리는 것 외에 어떤 정보도 알고 있지 못하기에 영화적 요소가 더 눈에 잘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영화의 목적성이다. 일반적인 스포츠물의 목적은 하나다. 우승, 극복, 아름다운 스포츠맨십 등등. 대부분 거기에 화해라는 요소를 양념처럼 끼워 넣는다. 그렇지만 영화 <페이스메이커>는 좀 다르다. 동생과의 화해가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목적은 하나다. ‘나 자신을 위한다.’ 늘 남을 위한 달리기만을 해 온 만호가 자기 자신을 위한 러닝을 하는 모습.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조연의 삶을 살고 있다.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차별화 된 목적성이 뻔한 스포츠 영화를 벗어나게 한다.
내가 인생의 주연이 아니란 걸 깨달을 수는 있지만, 거기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조연도 아름답다고 하지만 과연 인생에서도 그럴까.
'영화 삼매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끝까지 간다] 진짜 끝까지 가는 영화 (0) | 2014.07.11 |
---|---|
[엣지 오프 투모로우] 죽어도 죽어도 전쟁터에서 깨어나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거지? (0) | 2014.06.15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표절과 리메이크, 자기복제와 재탄생의 경계선에서.. (0) | 2014.04.29 |
[밤의 여왕] 모두가 착하다고 보는사람까지 착해지지는 않는다. (0) | 2014.03.04 |
[겨울왕국] 보고 나올 때 레리꼬~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흡입력 (0) | 2014.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