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구석구석 방랑가족(여행, 맛집)

[세부여행 4일차] 마무리는 시내관광지로..

슬슬살살 2014. 7. 27. 00:07

◆ 마젤란 십자가 & 산토니노 성당

세부의 마지막 일정은 시내의 유적지 몇개를 둘러보는 것이다. 오전 시간을 관광으로 보내고 3시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면 짧기만 했던 이번 여행이 마무리 된다. 아침부터 일찍 찾은 곳은 마젤란의 십자가 유적이다. 산토니노 성당과 세부시청 사이에 있는 작은 건축물 안에 600년 된 나무 십자가가 있다.

 

역사적으로 외침이 심했던 필리핀이고, 그 외침중 하나가 마젤란의 방문이다. 선교로 시작해서 약탈로 끝나는 서양식 제국패권주의가 필리핀에도 미쳤었고 종교라는 신성한 형태로 접근했지만 그 결과물은 피폐해진 필리핀의 모습이다. 지금 사진의 십자가는 가짜이고 그 안에 진짜가 있다고 하는데 그 가짜마저도 보수공사중이다. 그런 와중에 진짜가 저 안에 남아있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600년 된 나무라면서.. 하긴 그 실체가 무에 중요할까. 십자가를 세웠다는 사실과 그걸 잊지 않고 있는게 중요하다.

 

 

마젤란 십자가 주변에는 기원을 해주는 무속인들이 비용을 구걸(?)하면서 이상한 기원행위를 하고 있고, 주변에는 구걸하는 사람들 천지다. 가이드 얘기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이드라인이 쳐졌고 안까지 못들어오는 모양인데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로 앞까지 들어올 수 있어 불편했다고 한다. 시청 앞에서까지 구걸하는 이들이 만연한 걸 보면 필리핀의 미래가 어두워 보인다. 아무튼, 마젤란 십자가 건너편에 입장료를 받는 성당이 있는데 산토니노 성당이다. 이 성당은 필리핀 전역에서 기원을 하기 위해 오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이 특별한 인형때문이다. 아기예수의 형상이라는 이 인형은 스페인에서 준 것인데 성당 곳곳에 이 인형의 유래와 영험함을 증명(?)하는 그림들이 붙어있다. 스페인 인형이라 하기에는 너무 동양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인형만큼은 줄을 서서 관람해야 하는데 앞서서 인형을 대하는 신자들의 자세가 엄숙하고 진지하다.

 

 

그런데 이 성당의 이름이 산토리노인 것인가? 영문으로는 산토니노인데?!

 

 

성당 바깥쪽 회랑에는 신자들이 기원을 하는 장소가 있다. 붉은 색의 초에 불을 붙이고 기원을 하는 곳인데 초가 무료다. 입장료를 받는 대신으로 생각된다. 신자는 아니지만 먼 이국 땅에서 간단하게 기원을 올렸다.

 

◆ 산페드로 요새

 

스페인 통치시절부터 존재했던 요새로 각종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긴 역사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묻어있는 곳인데 세부 독립운동 기지로도, 군막사와 포로수용소로 쓰인적도 있는 역사적인 건물이다. 요새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게 느껴지지만 강화도의 초지진같은 건물보다는 훨씬 크다.

 

 

필리핀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봤을 때는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오히려 돌아와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보니 새롭다. 막상 을씨년스럽기남 했던 저 우물도 몇백년 된 우물인데다가 저기 깔려있는 작은 전시품들은 진지하게 살펴 볼걸 그랬다. 사실 이 전시관의 정체가 아직도 좀 이상한데 한쪽에서는 침략자들로부터 전달받은 인형을 신성시 여기고, 또 한쪽에서는 마젤란을 격퇴한 '라푸라푸'추장을 기념하는 식의 주제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젤란을 무찌른 세부지역의 추장 '라푸라푸'

우리식으로는 제네럴 셔먼호를 불태운 사건과 비슷하다.

 

 

한때는 적들과 대립하던 장소였겠지만 지금은 예쁜꽃들이 활짝 피어서 향기를 내뿜는 정겨운 곳이다. 돌로 쌓아올려진 벽돌과 습한 날씨가 만나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중앙광장에는 무슨 행사가 있는지 텐트설치가 한창이다. 성곽 위편으로 걷다보면 수원화성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우리쪽이 훨씬 잘 지었다. ^^V

 

 

한바위를 다 도는데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진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설치되어있는 몇 대의 대포가 이곳이 요새였음을 다시 일깨워준다.

 

 

짧은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 입구쪽에 있던 아기예수(?)같은 종교물 옆에 고양이가 졸고 있는데 아무도 제어하는 사람이 없다. 필리핀 특유의 낙천성과 느긋느긋함이 고양이에 투영되어 보인다.

 

 

간단한 유적지 관광과 식사까지 마치고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통과의례처럼 정해져 있는 라텍스 가게와 기념품점을 들렀다가 공항으로 향했다. 너무 일찍 들어와서인지 할 것도 없고 춥기도 하고.. 게다가 공항내부 가게는 볼게 별로 없다. 보딩 때문에 일찍 들어올 수 밖에 없었던게 아쉽다. 남는 페소로 기타와 군것질거리를 사고나서 추위를 버티고나니 비행기가 이륙할 시간이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돌아갈 때가 가장 아쉽다. 평범한 패키지 여행이었지만, 채은이와의 첫 해외여행 여운이 오래 갈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