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뒤마의 볼가 강] 뒤마와 함게 떠나자. 축제의 한 복판으로..

슬슬살살 2014. 7. 28. 22:50

여행한다는 것은 완전히 말 그대로 '사는 것'이다. 현재를 위해 과거와 미래를 잊는 것이다. 그것은 '가슴을 열어 숨을 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이며, 자기 것인 물건을 소유하듯 창조를 소유하는 것이고, 땅에서 아무도 뒤지지 못한 금광을 찾는 것, 대기에서는 아무도 못 본 경이로움을 찾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작가보다는 일반 작가의 여행기를 더 좋아한다. 모두 그런 건 아지겠지만, 전문 여행작가의 글과 비교했을 때 그들의 이야기는 꾸밈이 없고, 무조건적인 동경이 없고 가식이 없다. 대부분 담백하며, 사색하고, 무엇보다 위트가 있다. 그래서 빌 브라이슨의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200년 전의 인물이 쓴 여행기를 읽었다. 그것도 엄청난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것을..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대가인 뒤마는 1858년 러시아 여행을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동서양이 융합되어 있는 볼가강 유역을 지나치면서 칼미크지역과 아스트라한 유역을 들르게 된다. 이곳에서 누렸던 즐거움을 그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담아냈으니,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여행이다.

 

뒤마는 아스트라한에서 아르메니아인과 타타르인들을 만나고 칼미크로 건너가 투메인 왕을 만나 축제를 즐긴다. 이것이 15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여행기의 내용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간 흥미진진한게 아니다. 먼저 아스트라한부터 보자. 지금은 러시아의 한개 주(州)이지만 불과 200년 전에는 동서양이 어울려 사는 동네였다. 먼저 유대인에 버금가는 탄압을 받아온 아르메니아인을 우리는 이 글에서 만날 수 있다. 이 글에서의 아르메니아인들은 탄압을 받아온 서글픈 소수민족이 아니라 손님을 초대하는 것을 즐기는 유쾌한 민족이다. 티무르의 후손인 타타르족 역시 그들 스스로의 고유문화를 지키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면서 무리없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온갖 탄압과 압제에 빠져있는 현재의 모습에 비하면 어느쪽이 우수한 사회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유목민인 칼미크족은 몽골족의 후예들로 유럽의 유일한 불교신자들이다. 뒤마가 여행하던 당시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왕을 가진 선량한 민족으로 매사냥과 말몰이를 즐긴다. 뒤마는 이들의 축제에 초대되어 왕비에게 헌사하는 시까지 지어 올리는데 번역된 내용만 보더라도 당시 투메인 왕비가 얼마나 황홀해 했을지 눈에 보일 정도로 수준높은 헌시다. (역시 뒤마?!) 이 시로 투메인 왕비의 손등에 키스를 하는 영광까지 얻게 된다.

 

하나님은 왕국마다 경계를 정해 주셨으니,
여기는 산이 경계고 저기는 강이 경계다.
그러나 주 예수는 그 어지심으로 그대에게 내리셨다.
사람이 마침내 숨을 쉬는 경계없는 대 초원을.
그대의 법 아래 그대가 제국을 건설하여
그대의 은혜와 친절과 조화를 이루도록. - '뒤마가 투메인 왕비에게 한사한 시'

 

시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뒤마가 묘사한 당시의 축제분위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피아노와 춤이 어우러진 그들의 축제는 읽는 것만으로도 흥이 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지고한 권위의 왕이 아니라 축제에서 신나게 즐기는 인간으로서의 '왕'을 보는 것도 즐겁다. 뒤마는 먹는 것도 모두 기록을 해 놓았는데 캐비어, 기러기 간, 말고기(심지어 말고기 회도 먹는다.)까지 산해진미를 모두 즐긴다. 시끌벅적한 칼메인의 축제를 마치고 증기선을 타면서 다시 서방세계로 돌아가는 뒤마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여행이 끝나는 아쉬움에 유난히 공감하게 된다. 이런 유쾌한 민족이 21세기에는 스탈린의 탄압으로 절멸 위기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걸 보면 다시 한 번 인류의 죄악이 떠오른다.

이 글을 읽으면서 뒤마에 대해 인간적인 친밀감이 든다. 뒤마는 곳곳에서 숫자 계산 오류를 남겼는데 이 얼마나 생동감 넘치는가!! 게다가 뒤마의 할머니는 흑인이었다. 한마디로 인간미를 넘어서는 위대한 작가인 것이다. 이 글의 원문은 뒤마의 여행 전체의 기록인 <러시아 여행기>의 일부를 따서 번역했다. 이 원전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번역판이 없는 것인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아쉽다.

 

뒤마는 이 글 안에 단순히 유쾌함만을 남긴것이 아니다. 글 곳곳에는 특유와 풍자와 위트가 녹아 있으며 날카로운 비평도 살짝 엿볼 수 있다. 이런 걸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왕은 불필요한 것은 너무 많이 가졌지만 필요한 것들은 너무나 부족하구나, 라고 한탄하며 잠이 들었다.

 

오 문명이여! 내가 어디선가 다시 너를 만나 너의 희생제물이 된다면, 그건 단연코 우랄산맥과 볼가강 사이나, 카스피해와 엘톤 호수 사이에서는 아닐 것이다.

 

읽는 이에게 간접적인 대리경험과 함께 재미와 앎까지 제공한다면 최고의 여행기이다. 그런 면에서 <뒤마의 볼가강>은 그 모든 걸 충족시키는 최고의 여행기이다.

 

 


뒤마의 볼가 강

저자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출판사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2010-07-1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1857년 10월, 프랑스의 대문화 알렉상드르 뒤마가 볼가 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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