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분? 어떤 시간일까?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눌 때, 오롯이 육체적인 관계만이 존재하는 시간이다.
확실히 거장의 시선은 일반인과 다르다. 사랑에 대한 고찰이라고 한다면 감성적인 면을 부각시키거나,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1분>처럼 육체적인 관계에서 출발하는 사랑은 상식 범위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11분>이 오롯이 육체적인 사랑만을 다루는 건 아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육체에 대한 깊은 고찰에서 그만의 사랑론을, 운명을 개척하는 인간의 삶에서 신의 존재를 이야기 한다.
잠이 들었다가 롤러코스터 안에서 갑자기 깨어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갇혔다는 기분이 들 것이고, 커브가 두려울 것이고, 거기서 내려 토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롤러코스터의 궤도가 내 운명이라는 확신, 신이 그 롤러코스터를 운전하고 있다는 확신만 가진다면, 악몽은 흥분으로 변할 것이다. 롤러코스터는 그냥 그것 자체, 종착지가 있는 안전하고 믿을 만한 놀이로 변할 것이다. 어쨌든 여행이 지속되는 동안은, 주변 경치를 바라보고 스릴을 즐기며 소리를 질러대야 하리라.
이게 코엘료가 운명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신에 의해 운명이 정해져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행복 여부는 바뀐다. 코엘료의 세계관에서는 신이 내 운명(롤러코스터)를 운전하고 있다는 확신이 절망적인 운명을 흥분으로 바꾸어 놓는다.
마리아는 창녀다. 브라질 출신의 이 여인은 평범한 어린 시절을 꿈꾸고 백마탄 왕자를 기다린다. 수많은 빈민가의 예쁜 아가씨들이 그렇듯, 배우가 되게 해 주겠다는 꾀임에 빠져 스위스 나이트클럽에 발을 들여 놓는다.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해 에이젼시에 프로필을 뿌리지만, 결국에는 몸을 파는 여인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이 지랄같은 운명은 모두 마리아의 선택이다. 작중 그 누구도 강제하거나, 운명적으로 그 일을 해야 할 필요성 따위는 나타나지 않는다.(가난한 부모가 있다던지) 그럼에도 마리아는 스스로 창녀가 되었다.
"하룻밤? 마리아, 과장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건 사십오분 정도에 불과해. 아니 옷벗고, 예의상 애정어린 몸짓을 하고, 하나마나한 대화 몇마디 나누고, 다시 옷입는 시간을 빼면, 섹스를 하는 시간은 고작 십일분밖에 안되잖아."
11분. 겨우 11분을 축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 24시간 중 그 11분 때문에 결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의 웃음을 참아내고, 늦게 귀가하게 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함께 제네바 호수를 거닐고 싶은 수십 수백명의 다른 여자들을 훔쳐보고, 자신을 위해 값비싼 옷을, 그 여자들을 위해서는 더 비싼 옷을 사고,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창녀를 사고, 피부관리, 몸매관리, 체조, 포르노 등 거대한 산업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훌륭한 창녀가 되기 위해 수많은 독서와 공부를 거듭한다. 이것은 스스로 선택한 운명에 충실하려는 모습이다. 비록 가장 낮은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만 마리아는 스스로의 선택임을 존중하고 이를 위해 노력까지 하는 것이다. <11분>은 마리아가 육체적 관계에 대해 깨달으면서 도출한 시간이다. 육체끼리 부딪히는 순수한 시간은 채 11분인 것이다.
◆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까지 허용되어 있는가. 레일 안까지인가?
흔한 얘기지만, 마리아는 사랑에 빠진다. 그것도 두 남자와.. 한명은 백마탄 왕자님이다. 모든 걸 가지고 있고 마리아의 눈에서 빛을 본다. 유명한 화가이며, 백만장자에 가까운 젊은 청년. 섹스보다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랄프가 첫번째 남자다. 그는 마리아에게 운명을 느끼고, 모든 것을 함께 하고파 한다. 마리아의 직업조차도 이해하는 남자다. 다른 한명은 완전히 정반대의 남자다. 젊고 잘생긴 갑부임은 똑같지만, 고통을 가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 성욕자 테렌스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에게서 육체적인 극한을 경험한다.
왜 코엘료는 고통을 가하거나 받는 방식에서 사랑을 느끼는 변태성욕자를 등장시켰을까. 코엘료가 말하고 싶었던건 육체적인 관계의 한계성을 말하고 싶었던건 아닐까. 육체적인 쾌락은 결국 11분에 불과하며, 심지어 고통 조차도 인간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한다. 성은 결국 통제력의 상실을 통제하는 기술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코엘료가 섹스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성은 결국 통제를 필요로 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결국 마리아는 랄프와 이어진다. 마리아는 목표로 했던 돈(브라질로 돌아가서 농장을 살 수 있는)을 다 모았을 때 브라질행 비행기를 탄다. 랄프와 이어졌을 때 마리아는 떠올린다. 그녀가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선택은 운명이 해 준 것이라고. 그녀는 오로지 위험을 무릅쓴 적밖에 없었다. 코엘료가 세계적인 철학자라 할 지라도 이런 운명론에는 동의 할 수 없다. 오롯이 인간의 선택과 자유의지 맹신자인 나로서는 신의 존재와 운명의 결정론은 언제나 찝찝하다. 나는 성과 운명이 자유를 잉태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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