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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자’ - 검은 바탕에 빨간글자 A

시간은 예술을 잊히게 만들거나 더욱 위대하게 만든다. 주홍글자는 당연히 후자다. 간음을 죄악시 여기던 시대가 아님에도 이 소설이 지금까지 널리 익히는 건 이 이야기가 도덕적 죄악과 가십이라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홍글자는 외도를 한 여인에게 내려진 수치스러운 형벌의 일종이지만 소설에서는 주홍글자를 받아들이는 헤스더의 마음가짐, 그걸 바라보는 ‘딤스데일’목사 마음의 형벌을 다루고 있다. 사람들은 목사가 이 투쟁에서 승리하여 틀림없이 영광을 얻어 변신하리라는 것을 굳은 희망을 갖고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승리를 향해 투쟁하는 동안 죽음을 초래할지도 모를 고뇌를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이야기는 죄악을 다루지만 수많은 장면은 가십화되어 이 두 주..

‘웰스의 세계문화사’ - 70년 전 천재의 세상 읽기

웰스의 세계문화사는 역대의 모든 역사서 중에서도 으뜸인 작품이다. 무려 1946년에 쓰인 이 책은 도저히 70년 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서술과 고찰이 총망라되어 있다. 지금처럼 인터넷과 같은 정보 습득 수단이 없는 와중에 이런 저술을 남길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훌륭한데, 현재의 시선으로 볼 때에도 정확한 사실확인에 입각해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거의 모든 역사를 담았다. 이 책은 세계문화사 대계를 보다 대중이 알기 쉽도록 압축했는데 단순한 요약본이 아니라 교양서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진 별도의 작품이다. 문화사라는 제목답게 일반적인 기술적인 역사(토기, 종이, 수레 등 발명품 위주의) 대신 언어, 그림, 사상을 중심으로 역사를 다루고 있어 그야말로 사..

올빼미 - 권력의 추악함

소현세자의 의문사는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미스터리 하고 의구심이 많은 사건이다. 청국에 볼모로 잡혀갔다 귀국한 일국의 세자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한 줄의 기록이 전부인지라 많은 이들에게 오만가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물론, 비극적인 일이지만 창작자에게는 매력적인 이슈다. 올빼미는 소현세자의 이 비극적 사건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흡입력 강한 역사적 토대 위에 주맹증을 가진 주인공을 내세워 강력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시시각각 반전 요소를 곳곳에 집어넣어 갈등 구조가 실시간으로 변한다. 영화 중반까지는 관객들이 범인을 궁금해 하지만 어느 시점을 분기로 이야기의 방향 자체가 알 수 없게 되어버려 끝까지 스릴을 잃지 않는다. 독선적이면서 끊임없이 권력을 탐하는 인조 역할의 유해진 ..

영화 삼매경 2023.01.19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 영광의 날들은 가고

이제 어벤저스는 예전의 영광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1세대 이후, 스파이더맨을 제외하고 새로운 구심점은 없어 보인다. 블랙팬서, 샹치 같은 미래 세대 캐릭터들이 강렬한 흡입력을 보여줘야 할 텐데 하나같이 힘을 못 쓰고 있다. 특히 이미 스페이스 오페라 규모로 넓어져 버린 스케일은 더 이상 현실 세계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너무나 부적절하다. 타노스급의 괴물들이 우글대는 위협에서, 전설의 바다종족이 나타나는 지구에서 러시아의 핵 위협이나 이상 기후문제 같은 지구적 규모의 문제를 다룰 수 없어져 버렸고 점점 현실세계와 동 떨어진 이야기만을 하게 되어 버렸다. 특히 블랙 팬서 시리즈는 첫출발이 괜찮았기에 더 아쉽다. 물론 과도한 오리엔탈리즘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비밀스러운 국가 ..

영화 삼매경 2023.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