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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Revisited – 비틀즈의 미발표곡 route 7처럼

그런 건 없다. 비틀즈의 미발표곡 중Route7이라는 곡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수는 소설의 마지막에 이를 밝혔는데 그 내용이 특이하다. 여기에 나오는 비틀즈의 싱글은 제가 아무리 찾아봤지만 이 세상에는 없었습니다. 혹시 구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길. 도대체 있다는지, 있었다는 건지 모호한 문장이다. 7번 국도는 그런 소설이다. 작가의 젊은 시절의 인상주의 풍의 그림처럼 관념적으로 다루고 있다. 완전한 망각이란, 사랑 안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보존. 그러니 이 완전한 망각 속에서, 아름다워라. 그 시절들. 잊혀졌으므로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기억의 선사시대. 이제 우리에게는 그 시절의 눈이 없지. 그 시절의 귀와 입과 코가 없지. 스무살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너무나 끔찍한 얼..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 해결책 없는 관계의 불안

사랑이라는 감정은 젊은이들에게는 맹목적인 환상을,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불투명한 관념으로 비친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본성이 이기심과 어우러져서 매번 다른 모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사랑을 맹목적으로 규정하고 정의하며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을 할 수는 있을 거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불안한 감정을 과하게 지니고 있는 소수의 사람을 다루고 있다. 마음의 병 수준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도 많은 일반인들은 이 책에서 사랑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 아마도 누구나 가지는 젊은 시절의 불안과 불확신에 무척이나 도움을 받고 싶었나 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결여된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들은 이상화한 관계의 전..

더 퍼스트 슬램덩크 - 다시 한 번 돌아온 ‘농구가 하고 싶어요’

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 중 슬램 덩크에 ‘꽂히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을까. 속칭 ‘왜색’이 짙은 만화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꿔서 출판해야 할 만큼 규제가 심하던 시절에도 ‘슬램 덩크’는 엄청난 인기를 몰아치며 수많은 남학생들을 농구장으로 이끌었다. 한 경기를 거의 반년에 걸쳐 연재할 만큼 긴 호흡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그 누구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단행본을 가진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 슬램덩크가 20여년이 지난 지금 극장판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무려 ‘새 에피소드’를 들고서. 강백호 대신 송태섭을 중심에 둔 이 극장판은 ‘만화’라는 한계를 넘어서 2월 27일 현재 어벤저스의 ‘앤트맨’ 신작을 바짝 뒤쫓고 있으며 곧 애니메이션 흥행 2위인 ‘너의 이름은..

영화 삼매경 2023.02.27

개별적 자아 – 봉태규의 수다

봉태규는 유명 배우다. 81년생으로 나와는 고작 1살 차이이지만 내가 한창 군대에서 뺑이를 치던 22천 년에 그는 데뷔했고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작품운은 없어서 스타가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활동에 비해 ‘잘하는 배우’라는 수식어는 꾸준히 지켜내 왔고 작년에 와서야 로 빛을 받았다. 서태지를 좋아하는 점을 빼고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글 속의 인간 봉태규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적어도 갓 아빠가 된 봉태규는 이 에세이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쪼잔함, 경박함, 두려움, 무탈한 삶에 대한 감사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무탈하게 학교를 나오고 꽤 괜찮은 직장에 근무하면서도 언제 끝장이 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40대 남성이라면 누구나 저런 고민들에 동질감..

아바타: 물의 길 – 기술이 보여주는 영화의 미래

전작은 기술로 만들어낸 영화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이면서 작품적인 면에서도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2009년에 세워진 그 기록이 이번 속편으로 깨어질 것을 기대해 봤지만 아쉽게도 넘지 못했다. OTT로 인해 쪼그라든 영화시장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전작 ‘아바타’가 1위 자리에서 버티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으로는 1313년 전의 아바타를 놀랍도록 뛰어넘었을 텐데 흥행은 그에 미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이 아무리 올라왔어도 3D는 아직 익숙치 않은 환경임에는 확실하다. 처음에는 탄성을 자아내지만 2D에 비해 부족한 색감, 긴 러닝타임이 주는 피로도는 영화에 대한 집중도를 흐린다. 이 한계가 영화적인 흐름과 서사, 아름다운 색채가 주는 감동을 현저하게 떨어트렸다. 영화적인..

영화 삼매경 2023.02.25

미친 포로원정대 – 미래의 고통까지 잊을 수 있는 도전

이것은 실화다. 1938년 이탈리아는 무솔리니 체제 안에서 전 세계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펠리체 베누치는 에티오피아에서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케냐산이 보이는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곳에서의 끝없는 무료한 생활에서 베누치는 탈출하여 해발 5천 2백미터의 케냐산을 등정하는 계획을 세운다. 산을 넘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정상을 밟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미친 계획을. 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포로여, 당신은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자와 전쟁 포로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모르는가? 전자는 그 형량이 얼마나 되건 자유의 몸이 될 정확한 날짜를 안다. 반면에 우리는 그렇지가 않다. 이놈의 전쟁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우리가 받은 형기가 얼마나 더 연장이 될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

‘확신의 덫’ - 중요한 건 자신의 불완전함을 믿는 것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 때문에 열심히 일을 잘해오던 사람이 승진을 하고 리더 직급이 되면 전혀 딴 사람이 되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도 그랬고. 분명, 일을 잘 하는 것과 잘하게 만드는 것은 큰 차이를 가진다. 그것이 어려우면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리더십과 성과관리 서적이 넘쳐나는 거고. 저자는 400여쪽에 달하는 글을 통해 상사의 노력대로 팀이 굴러가지 않는 원인을 분석했고 나름의 해결책도 제시했다. 안타깝게도 도깨비방망이 같은 해결법은 없다. 그 대신 서로가 이해하기 위해 더욱더 노력할 것이라는 주문을 해 온다. 그저 내 마음을 왜 몰라줄까 하는 생각 이면에 있는 은근한 무시, 경쟁, 두려움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 때 온전한 리더십이 발휘된다. 가장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