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345

퍼펙트 데이 - 행동주의자의 낭만주의

퍼펙트데이는 내전이 막 끝난 보스니아에서 활동하는 NGO를 소재로 하고 있다. 무척이나 고귀한 활동이지만 정작 활동가들의 모습은 타성에 젖은 관료를 보는 듯 하다. 아무리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가더라도 오랜 기간 같은 일들이 주어지면 봉사 역시도 그냥 일이 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우물에 빠진 시체를 건지는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정작 그 물을 먹게 될 주민들의 건강에 관심이 있는 건 신입뿐이다. UN군이 하지 마라면 그냥 안하는 식으로 시니컬하게 대응하는 베테랑 활동가 맘브루와는 대조적이다. 이 영화는 고결한 희생이나 내전에서 희생을 강요받는 인권을 다루지 않는다. 그저 그 안도 아이들은 공을 차고 주민들은 장을 여는 보통의 세상임을 보여 준다. 물론, 자원은 풍족하지 못해서 로프 하나를 구하기 위해..

영화 삼매경 2021.10.26

보이스 - 모르는 번호는 받지말고, 돈을 요구하면 한번 더 의심할 것

범죄는 그 종류를 막론하고 영화의 좋은 소재다. 거의 90%의 영화는 범죄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늘 우리의 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하는 작품은 거의 없는 듯 하다. 보이스피싱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피해자의 무지함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나는 절대로 걸리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범죄에 비해 관객들이 피해의 막중함을 직접 체감하기 어려워서인 것 같은데 영화 ’보이스‘는 그런 선입견을 철저하게 깨 부순다. 물론 과장된 설정들이 곳곳에 있어서 이게 영화라는 걸 계속 인지 시키지만 적어도 전화 통화로 범죄가 일어나는 장면들은 그 어떤 액션보다도 긴박하고 살떨린다. 스트레스 지수는 당연히 높다. 난데 없이 당하는 피해자의 모습들과 ’저정도면 나도 속겠다‘라고..

영화 삼매경 2021.10.20

그린랜드 – 딥입팩트 하위버전을 궂이?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딥 임팩트’는 세기말 분위기와 높은 완성도를 바탕으로 큰 흥행을 기록했고 지금 봐도 꽤나 잘 만든 영화다. ‘그린랜드’의 대부분 설정은 딥임팩트를 그대로 차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유성의 습격으로 인한 지구의 멸망과 이를 피하려는 인간의 허무한 노력, 선택받은 인간만이 들어갈 수 있는 대피소 같은 것들이 모두 동일하다.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딥 임팩트가 간신히 인류의 절멸을 막았다면 이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멸종-문명 리부트로 전개된다는 정도다. 완성도는 더욱 처절하게 차이가 나는데 ‘딥 임팩트’가 종말을 앞둔 여러 인간들의 군상을 다채롭게 그려냈다면 ‘그린랜드’는 보다 지엽적이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애를 제외하면 복합적인 심리를 가진 인물이 거의 그려지지 않고 ..

영화 삼매경 2021.10.13

마더! - 이기적인 신

처음에는 이게 무슨 영화지 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스트레스를 받고, 후반부에 접어들면 무슨 얘기인지 깨닫는다. 이때쯤 되면 관객은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진 자와 터부의 소재를 대하는 쾌감을 얻는 자 둘로 나뉜다. 첫 등장에서부터 주인공인 마더가 겪는 수난은 이해하기 어려운 스릴러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이해 여부와 다르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준다. 밑도 끝도 없는 수난과 이해할 수 없는 해프닝에 자연스럽게 넌더리를 내게 된다. 그건 애러노프스키가 그렇게 볼 수밖에 없도록 영화적 형식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 이동진 평론가 오로지 남편 하나만 바라보는 주인공이지만 점차 밀려드는 방문객들은 이 여인의 스트레스를 극한으로 보내는데 그건 이 방문객들이 예고없이 들이닥쳐 예의없이..

영화 삼매경 2021.10.12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 성공적인 뉴페이스 등장

기존의 마블과는 다른 문법으로 접근한 새로운 히어로 시리즈다. 일단 주인공이 아시아계라는 결단이 내려졌고 '신비로운 동양의 무예'라는 오리엔탈리즘이 적용되어 있다. 그리고 기존의 마블 시리즈와 연결고리가 뚜렸하지 않다. 물론 영화 마지막, 닥터 스트레인지의 '웡'과 연결이 되기는 하지만 그 전까지, 그러니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영화는 독립적인 히어로물의 위치에 있다. 봉인된 전설의 악마를 꺼내려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히어로의 구도는 사실 수십년간 다루어진 구태의연한 주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는 마블답게 끝내주는 액션의 연출로 이 식상함을 부숴버린다. 빌딩의 외벽 비계를 이용한 액션은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그리고 최근의 마블 시리즈가 전 우주적인 위기를 다루느라 에너지파같은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는 했..

영화 삼매경 2021.10.09

[인질] 투박하고 우직한 웰메이드 오락영화

‘인질’은 투박하면서도 우직한 영화다. 납치당한 유명인의 탈출 이야기라는 단순한 구조지만 쉴 새 없이 전개되는 장면 장면이 신선하다. 먼저 황정민이 본인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부터 심상치 않다. 영화배우 황정민이라는 이름은 여타 부연 설명 없이도 관객을 고스란히 몰입시킨다. 그야말로 괴리감이 0인 연기. 그리고 지존파를 연상케 하는 다섯명의 범인도 구태의연한 배경 설명이 없다. 모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선한 캐릭터들임에도 ‘그냥 악당’이라는 공식에 딱 걸맞는다. 어거지로 사연을 만들지 않아 관객은 ‘배우 황정민’과 ‘악당 다섯’의 대결을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볼 수 있어서 오락 영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중간 중간 보이는 살벌한 개그들, 황정민에게 유명한 대사를 시키거나(드루와 드루와) 박성웅이 ‘..

영화 삼매경 2021.08.24

[씽크홀] 코미디도 일관성이 있을때 빛나는 법

내심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씽크홀이라는 대형 사고를 이토록 가볍게 다루는 연출이라니… 영화 ‘씽크홀’은 어느날 갑자기 씽크홀로 빨려 들어간 서민들의 이야기다. 11년만에 내집 장만에 성공한 김성균을 필두로 금수저 동료에게 짝사랑을 빼앗기는 이광수, 월세사는 싱글대디 차승원까지 서민들이 모여사는 빌라 한 동이 통째로 씽크홀에 빠지게 되는데 도대체가 장르가 정리가 안된다. 비슷한 영화로 ‘엑시트’가 있지만 코미디라고 다 같은 코미디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맥락 없는 코미디를 하면서 어설픈 주제의식과 메시지를 담으려 하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었다. 등장인물의 연기에도 문제가 있다. 분명 내공이 탄탄한 배우들이건만 연출자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이 안된 건지 예능과 영화 사이에서..

영화 삼매경 2021.08.23

[블랙 위도우] 구태의연한 구성으로 긴장감 없는 헌정 영화

코로나 이후 첫 개봉한 마블 작품이라 큰 기대를 했는데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 온 블랙 위도우의 유일한 단독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맥락과 설정, 대립구도 등에 있어서 이전 마블 영화보다 퇴보한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특수한 능력보다는 강인한 특수부대원 정도의 위치에 있는 블랙 위도우의 능력치를 고려한 설정이겠지만 빌런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전 우주적 차원의 전쟁을 보고 난 직후여서인지 영화가 전반적으로 나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빌런 역시 구태의연한데 10여년 전 나왔던 캡틴 아메리카와 하이드라의 대결 구도와 차이가 없는 데다 블랙 위도우가 캡틴 아메리카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대체하지 못하면서 그저 그런 액션물로 전락했다. 대부분의 ..

영화 삼매경 2021.08.20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이 보여준 놀라운 인내력의 승리

최근 나온 영화 중 가장 핫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모가디슈다. 류승완 감독과 김윤석, 조인성 라인, 실화 배경, 남북한, 소말리아(실제 촬영은 모로코지만)라는 독특한 배경까지 일단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는 흥행 공식을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아프가니스탄 함락이라는 시대적 이슈까지 중첩되어 더욱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다. 이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연출을 보여주는데 류승완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액션 파트조차 상당히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영화적 허용 정도로 인식하는 비현실적인 총격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민간인 신분인 출연자의 설정을 깨뜨리는 그 어떤 액션도 없다. 실제로 남북한의 대사관 직원들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소말리아를 탈출하는 과정 그 어디에서도 살상행위가 ..

영화 삼매경 2021.08.19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AI는 불멸을 선물하는가

최근 신한생명이 광고에서 AI 모델을 기용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로지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름다운 여성은 처음에는 AI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등장해 광고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AI 캐릭터라 밝히기 전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인스타 DM으로 데이트 요청하는 이들까지 있었다고 하니, 기술의 진보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없애고 있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에는 이렇게 진짜와 똑같은 AI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이 AI의 역할은 죽은 이들을 대신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위로를 받고 늙고 죽어가지만 AI만큼은 영원히 살아남아 남은 AI끼리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게 이 영화의 스토리다. 처음에는 고뇌하고 슬퍼하고 거부하는 인간들과 대화 하는데서 그 역..

영화 삼매경 2021.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