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345

'나일강의 죽음' - 19세기 이집트로 떠나는 그랜드 추리 투어

현대의 추리소설의 기틀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년 전 그녀가 만들어낸 구성, 플롯, 모티브, 전개 방식이 지금의 장르물에서도 쓰일 정도이니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당시에 그녀의 소설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재미도 재미지만 그 배경의 아름다움에 있었다. 당시 세계 최고 강대국인 영국에서 유행을 하던 것이 바로 그랜드 투어,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영국에서도 최상위 귀족들만이 가능한 여가였다. 정보라고는 글밖에 없는 시대에서 나일강이나 오리엔탈 특급열차 여행 같은 이국적인 배경과 모험, 치정극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건 너무도 당연하다. 영화 '나일강의 죽음' 역시 당시 소설이 팬들에게 줬던 감정을 똑같..

영화 삼매경 2022.04.10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 허무맹랑하지만 엄청난 시크함

몰랐다. 이게 이런식의 B급 영화인지를. 심지어 1편인 줄 알고 결제한 2편이니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세상에 속편을 1편에 The만 붙여서 개봉하는 영화가 어디있을까. 그러니 헷갈리지. 그렇지만 전작과 연결고리가 거의 없다고 해서 다행이다. 세계관만 같은 듯 하다. '나쁜 녀석들'처럼 감옥에 갇혀있던 초능력 빌런들이 해방을 위해 가상의 적국을 쳐들어간다는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가면 갈 수록 가관이다. 상륙하자마자 함정에 빠져 갈려나가는 빌런들의 모습은 잔인하고 처연하지만 한 편으로는 실소가 나온다. 이 영화가 19금을 받은 이유가 잔인함인데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식인까지 나오니 말 다했다. 몸을 분리시키는 능력을 가진 TDK는 떨어진 팔에 사격을 당하면서 죽고, 서번트라는 빌런은 도망치..

영화 삼매경 2022.03.24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 킹스맨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편의 성공을 후속편들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킹스맨'의 위용은 살아있다. 가상의 첩보조직을 그리면서 S/F적인 요소들이 가득 들어가 있는데다 만화 같은 연출이 킹스맨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오밀 조밀하게 배치해서 가상인 걸 알면서도 몰입해서 보게 만드는 효과까지.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기관총의 등장과 함께 쓸모 없어진 근대 보병들이 떼거지로 죽어나가는 참혹한 모습 속에서 주인공이라 여겼던 사내의 멍청이 같은 죽음은 19세기 기사도의 마지막을 보여준다. 때문에 관객은 당황한다. 도대체 저 잘생긴 남자가 아니면 누가 주인공이란 말이지? 시대에 뒤떨어진 올곶은 기사도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젊은 배우보다는 나이 지긋한 ..

영화 삼매경 2022.02.25

엔칸토: 마법의 세계 - 이제는 하나의 미술작품이 되어버린 디즈니 월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60번째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기대가 높았지만,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다. 중남미를 배경으로 하는 이 만화영화의 배경은 디즈니 치고는 예외적으로 근현대사가 녹아있다. 바로 콜롬비아의 내전인데, 이 내전을 피해 숨어사는 엔칸토 가족들이 마법의 힘으로 번영을 이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미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코코가 떠오르지만 '코코'에 비해서는 깊이가 얉게 느껴진다. 콜롬비아의 내전을 피해 달아나던 마드리엘 가족을 구원한 건 알 수 없는 마법의 힘. 그 이후 마드리엘 가문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별한 마법의 힘을 가지게 되고 이 힘으로 마을의 번영을 이끈다. 그러나 주인공인 미라벨만은 왜인지 마법의 힘을 받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마법의 힘이 점점..

영화 삼매경 2022.01.21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어제의 너보다 오늘 더 성장했어

즐겁고 유쾌한 초반부를 지나 절정에 다다를 때 쯤 작가가 교체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매력적으로 쌓아올리던 캐릭터가 막판 한방에 무너지면서 평범한 한국 코메디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는 모습은 아쉽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려내는 시대상, 문제의식 만큼은 기존의 어떤 영화보다 매력적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95년도 대기업에서 '여직원'의 존재는 잔심부름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번듯한 대학을 나와 근무하는'커리어 우먼'도 존재했지만 그렇다 해도 남자의 벽을 넘지는 못했던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러니, 속칭 말하는 '상고'나온 '여직원'이라는 건 직원 취급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이 열악함은 그대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멋진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게..

영화 삼매경 2022.01.15

베놈 2: 렛 데어 카니지 - 베놈은 그저 핑계일 뿐

솔직히 많이 실망스러웠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15세가로 개봉했지만 베놈이 가진 폭력성, 잔학성은 훨씬 약해졌다. 데드풀처럼 오롯이 성인을 위한 MCU를 만들어 줄 수는 없었을까? 물론 스파이더맨과의 연결고리라는 역할을 가지고 있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우주의 절대악을 15세가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액션 장면 역시 전작에서 보여준 것 이상의 것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베놈의 코믹함을 강조하는 등 정체성에 혼란이 느껴진다. 적어도 산채로 사람을 잡아먹는 수준은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잔인함을 덜어낸 베놈의 모습은 마치 ‘마스크’의 짐 캐리 수준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스토리는 더 처참한데, 숙주인 톰 하디와 베놈의 갈등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삐진 룸메이트 수준일 뿐 심도 깊은 존재의 ..

영화 삼매경 2021.12.28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 - 잘 던지고 잘 받았다.

어벤져스 1기의 마무리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 놓지 못하고 있는 마블이지만, 이번 스파이더맨 만큼은 역대급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 내서 너무나 만족스럽다. 저작권 문제, 주인공 섭외 등으로 엉망진창이 된 스파이더맨 세계관을 한 군데로 모아서 깔끔하게 해결하는가 하면 마블의 멀티 유니버스 구조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해결 방법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팬들이 마블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고 나아가 이후에 나올 여러 분기의 작품들이 가져올 핍진성 오류를 미리 차단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설정 측면만을 신경 썼다면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을 것. 영화적 완성도도 뛰어나 과거의 스파이더맨 소환을 넘어서 눈물 날 정도로 멋진 마무리를 선물했다. 좋아하던 야구 ..

영화 삼매경 2021.12.26

몬스터 콜 - 성장을 위한 심리상담

몬스터콜은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성장 드라마다. 아픈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왕따 소년 코너가 가지고 있는 분노와 불안, 정서적 불안정한 모습을 우화를 통해 치료해 나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코너는 몬스터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세가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해 나간다. 코너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한 이 몬스터는 작고 여려 보이는 코너와는 정반대로 무자비하고 힘이 세다. 현실 세계에서 코너는 몬스터의 힘을 빌어 분노를 터뜨리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좀 더 이해하고, 성장해 나간다. 이야기 1. 새엄마를 취해 왕이 되련다는 무명을 쓴 왕자는 연인과 함께 도망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연인을 살해한다. 마녀인 새엄마가 저주를 걸었다고 생각한 왕자는 사람들을 모아 새엄마를 처단하고..

영화 삼매경 2021.12.26

기적 - 자신을 향한 용서

기적은 일견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따뜻하고 유쾌한 토속적인 한국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적에는 구태 의연한 코메디도, 예측 가능한 신파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가슴아픈 시대적 배경, 가족간의 용서, 나아가 자기가 짊어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멋진 영화다. 예고편에서 보여준 박정민과 윤아의 풋풋한 연애담이나 걸쭉한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윤아의 매력은 본편에서는 양념으로밖에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정민의 고집 이면에 깔려 있는 트라우마와 어색했던 누나의 모습이 너무 강렬하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주거조건 마저도 피눈물나는 노력이 필요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간이역이라는 형태로 치환해 보여주는데 달콤한 첫사랑과 어우러져 하나의 추억처럼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은 수학 천..

영화 삼매경 2021.12.07

오징어 게임 - 한국 드라마의 오리지널리티

출장을 와서 무심코 보다가 어느새 날을 새고, 다음날 올라오는 차 안과 집에 도착해서까지 손을 놓지 못했다. 왜 2021년이 ‘오징어 게임’의 해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는 드라마다. 이 콘텐츠가 넷플릭스의 영업이익을 수조원 끌어올렸다고 하니 그야말로 영상 콘텐츠의 역사를 새로 썼다.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장르는 매니악해서 여간해서는 망하지 않지만 그만큼 성공한 케이스도 드물다. 전 세계적으로는 ‘헝거게임’과 ‘큐브’ 정도만이 성공한 케이스로 떠오른다. 그러나 한국적인 정서가 가미된 서바이벌 게임은 여러모로 달랐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서양권에서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 연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치밀한 시나리오 전개와 놀라운 연출의 힘으로 성공했다 생각한다. 우선, 동화적인 미..

영화 삼매경 20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