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345

[더 포스트] 평범한 중년 부인의 윤리적인 결단

언론이란 건 엄청난 양면성을 가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에 빌붙어 사는 기레기로 대표되기도 하다가 특정 사안에서는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 편에서는 광고주의 멱살을 쥐 흔들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목숨을 내 걸고 전쟁터에 나가기도 한다. 우리 나라만 그런 건 아니어서 언론 선진국인 미국도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 같은 정론지가 있기도 하고 그의 백배에 가까운 황색지가 즐비하기도 한다. 언론이 이런 특성을 가지는 이유는 언론이 민간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을 하고 싶다고 대중을 외면해서는 가난해지며 그렇다고 대중에 너무 붙으면 크레이이티브가 떨어지는 예술계와 비슷한 맥락이다. 한 편에서는 탄탄한 벌이가, 한 편에서는 참 언론의 자세를 견지한다는게 쉽지만은 않을 터이다. 캐서린의 첫 ..

영화 삼매경 2020.11.18

[정직한 후보] 거짓을 말하지 못하게 된 정치인

어느날 갑자기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면?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영화에서 차용됐던 소재다. 짐 캐리의 에서는 거짓말을 못하게 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2009년에 나온 인디영화 은 아예 모든 사회가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는 걸 전제한다. 그 대부분은 악질적인 행위라기 보다는 가벼운 거짓말 - 잘 생겼어요, 언제 한 번 밥먹어요, 내가 한 때는 이렇게 성공했어 등등 - 이 대부분이라 삶을 조금 편하게 살아가는 과정 정도로 읽힌다. 하지만 정치인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는 정치인의 말을 100%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실이길 바란다. 그 달콤한 말이 진실일 때 주어질 보상이 크기 때문에..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인은 표를 바라기 때문에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일들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초심을 잃게 ..

영화 삼매경 2020.10.21

[팬텀 스레드] 자의식 과잉을 다스리는 마조히즘

우리는 장인정신을 가진 예술가에게 경외와 존경의 메세지를 보낸다. 단 하나의 예술품, 단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기나긴 고행을 겪거나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깐깐함 등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고지식함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영화 가 관객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줬던지 기억해보자. 는 패션 디자이너를 장인의 위치에 놓고 반대편에는 연인을 올려 놓는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배치지만 장인은 완벽에 더불어 고집과 독선을 가지고 있고, 연인은 집착을 쥐고 있다. 보통의 경우에서 연인의 역할이 평범한 조력자, 영감의 원천으로 기능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사랑의 마스터피스를 노리는 또하나의 장인으로 등장한다. 1950년대 사교계 최고의 디자이..

영화 삼매경 2020.10.05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더욱 훌륭했을

2.5단계로 격상하기 직전, 정말이지 오래간만에 영화를 봤다. 코로나로 뒤숭숭한데도 꽤 들어찬 관객을 보면서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못해다 칠팔백만은 찍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신세계2라는 유언비어를 들려줘서 그런가보다 하고 보다가 깜짝 놀랐다. 완전 아니잖아. 일단 즐거운 것은 방콕의 모습이다. 영화 특징상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익숙한(?) 동남아의 간판과 모습들이 반갑다. 국가의 특수요원에서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는 인남(황정민)은 옛 연인의 납치된 딸을 찾으러 방콕으로 향한다. 딸을 구하려다 연인도 죽어버린 상황. 그리고 일본 청부업의 미친개인 레이(이정재)가 형의 복수를 하겠다며 그를 뒤쫒는다. 얽히고 섥힌 추격전 가운데 예비 스랜스젠더인 유이(박정민)이 인남을 돕기 시작하고 납치에 관여한..

영화 삼매경 2020.09.08

[쓰리 빌보드] 복수와 용서의 이야기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한 딸의 범인을 찾지 못하는 경찰에 대한 분노를 세 개의 광고판에 그들을 비난하는 광고를 게시함으로써 여실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경찰은 그녀를 회유하고, 협박하고, 사과한다. 여느 스릴러물이라면 이 광고를 건 여성은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나서리라. 그리고 경찰이 이 사건에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위험에 처하거나 그들을 처단할거다. 그런 면에서 딸을 죽인 범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는 스릴러물이라 볼 수 없다. 포털의 영화정보에서 의 장르 분류는 코미디/드라마/범죄라고 되어 있다. 원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탓일까. 코미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게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찰들이 막무가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 시..

영화 삼매경 2020.09.03

[반도]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하면서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2020년 한국 극장가가 간만에 숨통을 틔었다. 전작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어 확장된 세계관을 가지고 돌아온 좀비영화 덕분이다.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던 이 영화는 아쉽게도 전작의 아성을 뛰어넘는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렇게 참혹할정도로 못만든 영화일까? 과 별개로 바라본다면 이 역시도 다른 방식의 한국식 좀비영화의 한 축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보통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절대적인 악(惡)이자 대적자로 나온다. 간혹 악역의 인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혼자 살기 위한 이기적인 인간이거나,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기업가 또는 악당 과학자다. 에서 악인은 조금 다르다. 아마도 4년 전 부산행 사태에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을 631부대는 무참한 한반도에 갇혀 희망..

영화 삼매경 2020.08.10

[버닝] 사라진 귤은 누가 먹었을까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꽤나 난해하다. 사회의 밑자락에서 살고 있는 종수(유아인)와 해미(전종서)의 의식구조와, 상류층인 벤(스티브 연)이 이를 파괴하는 모습을 담았다. 단순하게 보면 프롤레탈리아와 부르주와의 대립과 파괴, 혁명을 그리는 일반적인 메타포로 볼 수 있겠지만 이창동 감독은 이를 훨씬 복잡한 구조로 가져간다.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입에 침이 나오면서 정말로 맛있다고 덧붙인다.(벤이라면 물론 그 방법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벤은 주위에 늘 귤이 있어서 원할 때면 언제든 집어먹으면 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마음의 돌도 직접 실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 이동진, 영화는 ..

영화 삼매경 2020.08.09

[글래스] 새로운 오리진의 시작

또다시 예상을 뒤엎었다. 스릴러물인줄 알았지만 히어로물이었던 , 또다시 스릴러물인 줄 알았지만 의 후속작이었던 , 결말이겠거니 예상했지만 세계관을 한껏 확장시키면서 새로운 시작의 도래를 알리는 까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히어로 3부작은 하나의 완결이 아니라 스핀오프 3부작이라고 하는게 맞을 듯 하다. 극찬은 여기까지 하고, 는 전작들보다는 정적이다. 그동안 폭삭 늙어버린 브루스 윌리스는 둘째로 하더라도 대규모의 전투씬이라던지 하는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전작들 역시 말이 히어로물이지 호쾌한 액션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그리 아쉽지는 않다. 오히려 치열하게 전개되는 두뇌 싸움이 의 매력에 가깝다. 영화 제목도 -유리-인건 사무엘 잭슨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걸 대놓고 얘기해 준다. 사실상 히..

영화 삼매경 2020.06.28

[23 아이덴티티] 영화의 형식을 부수고 튀어나온 빌런

영화도 영화지만 마지막 10초는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단 10초만으로 전체 영화의 장르를 바꿔버리는 이 반전은 형식적인 면에서나 영화적인 측면에서나 전무후무한 방법. 역대 반전 영화들은 많았지만 이런 방식의 반전을 보인 영화는 이 영화가 유일하다. 마지막이 너무 충격적이라 120분간 열연했던 맥어보이의 연기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휘발되어 버릴 지경이다. 지금은 이 영화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히어로 3부작의 중간, 빌런탄생 편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보는 도중에는 이런 식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게 있다니... 아직 를 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에서 히어로를, 에서 빌런을, 에서 마무리를 지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다중인격 환자인 케빈이 세명의 소녀를 납치하는데서 시작한다. 처음엔..

영화 삼매경 2020.06.11

[언브레이커블] 히어로의 탄생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너무 충격적이었다. 스릴러물로 보이던 영화가 도중에 히어로물로 바뀌다니. 영화는 대규모 열차사고에서 홀로 살아난 데이빗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조용조용한 성격에 예쁜 유부녀에게 선을 넘지 않을 정도로 집적대는 수준의 평범한 40대(?) 남자다. 아내와는 사이가 벌어졌는지 냉랭하게 이혼 직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죽다 살아난 이번 사고로 관계가 개선된다. 이 사고는 릴라이저, 유리선생이라 불리는 인간이 저지른 것으로 영화의 종반부에 밝혀진다. 어린 시절부터 허약한 체질인 릴라이저는 뼈가 부러진 채 태어나 넘어지기만 하면 부서지는 불행한 몸을 가지고 있다. 히어로 만화에 심취한 그가 '나같은 몸이 있다면 어디엔가 강인한 히어로도 있을꺼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규모 살상 사건들을 ..

영화 삼매경 2020.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