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8

더 퍼스트 슬램덩크 - 다시 한 번 돌아온 ‘농구가 하고 싶어요’

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 중 슬램 덩크에 ‘꽂히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을까. 속칭 ‘왜색’이 짙은 만화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꿔서 출판해야 할 만큼 규제가 심하던 시절에도 ‘슬램 덩크’는 엄청난 인기를 몰아치며 수많은 남학생들을 농구장으로 이끌었다. 한 경기를 거의 반년에 걸쳐 연재할 만큼 긴 호흡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그 누구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단행본을 가진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 슬램덩크가 20여년이 지난 지금 극장판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무려 ‘새 에피소드’를 들고서. 강백호 대신 송태섭을 중심에 둔 이 극장판은 ‘만화’라는 한계를 넘어서 2월 27일 현재 어벤저스의 ‘앤트맨’ 신작을 바짝 뒤쫓고 있으며 곧 애니메이션 흥행 2위인 ‘너의 이름은..

영화 삼매경 2023.02.27

‘주라기월드: 도미니언’ - 30년 역사의 아름다운 마무리

일단 공룡이 나오면 그게 무슨 영화건 기본은 한다. 태초에 인간보다 먼저 있었던 역사상 최강의 동물은 존재만으로 매력을 가진다. 여기에 인간의 과학으로 되살려내는 과거,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작은 심판, 일부 선구자의 도덕으로 인한 세상의 구원은 늘 헐리우드를 통해 인간의 우월함을 입증하는 도구로 쓰이곤 한다. 주라기 월드는 시리즈의 어느 시점이건 이 공식을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이유는 인간의 과학기술에 대한 도덕적 경계선을 사색할 수 있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과연 생명체의 복제는 무조건 문제일까. 인간의 멸종을 막기 위한 식용 돼지의 복제가 즐거움을 위한 공룡의 복제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까닭은 무엇인지, 이 오락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생각해 볼 수 있다. I..

영화 삼매경 2022.07.30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용서받을 기회를 위하여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도를 넘어서는 악행을 저질렀을 때 이런 말을 한다. ‘쟤 부모는 어떻게 쟤를 키운 거야’,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행위에 부모의 책임을 운운하는 건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 부모가 법적인 책임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는 명제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런 도발적인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바로 나쁜 자녀를 둔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는 당연히 아이를 잘 키워야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다. 사회 저명인사들도 마찬가지인데 황금만능주의부터 선민의식까지 다양한 부족함을 지닌다. 영화에는 상류층이 다니는 ‘한음국제중학교’ 학생 ‘김건우’가 자살을 시도하면서 시작한다. 사회배려대상자로 입학한 ‘김건우’는 왕따를 당한 것으로 주장하며 4명의 가해자 이름을..

영화 삼매경 2022.06.04

더 배트맨: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배트맨 시리즈의 다크함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배트맨의 탄생 자체에 惡에서 기인했다는 설정을 들고 나와 훨씬 더 복작하고 어두운 배트맨의 이면을 보여 준다. 덕분에 로버트 패틴슨의 아름다운 외모에 쏠린 초점을 충분히 분산시킬 수 있었다. 오히려 인간적 나약함을 나타내기에는 패틴슨이 더 적합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배트맨은 강도를 당한 부모님의 복수를 계획하고, 거대한 고담의 악에 맞서는 히어로였지만 그 배경에는 존경받는 부모와 그에 적합한 부를 가졌다는 면에서 완전무결한 영웅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부모 역시 한때 악에 굴복했으며 나아가 고담이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나타나면서 도덕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배트맨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영화의 주제로 드러난다...

영화 삼매경 2022.04.17

'나일강의 죽음' - 19세기 이집트로 떠나는 그랜드 추리 투어

현대의 추리소설의 기틀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년 전 그녀가 만들어낸 구성, 플롯, 모티브, 전개 방식이 지금의 장르물에서도 쓰일 정도이니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당시에 그녀의 소설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재미도 재미지만 그 배경의 아름다움에 있었다. 당시 세계 최고 강대국인 영국에서 유행을 하던 것이 바로 그랜드 투어,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영국에서도 최상위 귀족들만이 가능한 여가였다. 정보라고는 글밖에 없는 시대에서 나일강이나 오리엔탈 특급열차 여행 같은 이국적인 배경과 모험, 치정극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건 너무도 당연하다. 영화 '나일강의 죽음' 역시 당시 소설이 팬들에게 줬던 감정을 똑같..

영화 삼매경 2022.04.10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 허무맹랑하지만 엄청난 시크함

몰랐다. 이게 이런식의 B급 영화인지를. 심지어 1편인 줄 알고 결제한 2편이니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세상에 속편을 1편에 The만 붙여서 개봉하는 영화가 어디있을까. 그러니 헷갈리지. 그렇지만 전작과 연결고리가 거의 없다고 해서 다행이다. 세계관만 같은 듯 하다. '나쁜 녀석들'처럼 감옥에 갇혀있던 초능력 빌런들이 해방을 위해 가상의 적국을 쳐들어간다는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가면 갈 수록 가관이다. 상륙하자마자 함정에 빠져 갈려나가는 빌런들의 모습은 잔인하고 처연하지만 한 편으로는 실소가 나온다. 이 영화가 19금을 받은 이유가 잔인함인데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식인까지 나오니 말 다했다. 몸을 분리시키는 능력을 가진 TDK는 떨어진 팔에 사격을 당하면서 죽고, 서번트라는 빌런은 도망치..

영화 삼매경 2022.03.24

[씽크홀] 코미디도 일관성이 있을때 빛나는 법

내심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씽크홀이라는 대형 사고를 이토록 가볍게 다루는 연출이라니… 영화 ‘씽크홀’은 어느날 갑자기 씽크홀로 빨려 들어간 서민들의 이야기다. 11년만에 내집 장만에 성공한 김성균을 필두로 금수저 동료에게 짝사랑을 빼앗기는 이광수, 월세사는 싱글대디 차승원까지 서민들이 모여사는 빌라 한 동이 통째로 씽크홀에 빠지게 되는데 도대체가 장르가 정리가 안된다. 비슷한 영화로 ‘엑시트’가 있지만 코미디라고 다 같은 코미디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맥락 없는 코미디를 하면서 어설픈 주제의식과 메시지를 담으려 하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었다. 등장인물의 연기에도 문제가 있다. 분명 내공이 탄탄한 배우들이건만 연출자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이 안된 건지 예능과 영화 사이에서..

영화 삼매경 2021.08.23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이 보여준 놀라운 인내력의 승리

최근 나온 영화 중 가장 핫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모가디슈다. 류승완 감독과 김윤석, 조인성 라인, 실화 배경, 남북한, 소말리아(실제 촬영은 모로코지만)라는 독특한 배경까지 일단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는 흥행 공식을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아프가니스탄 함락이라는 시대적 이슈까지 중첩되어 더욱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다. 이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연출을 보여주는데 류승완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액션 파트조차 상당히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영화적 허용 정도로 인식하는 비현실적인 총격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민간인 신분인 출연자의 설정을 깨뜨리는 그 어떤 액션도 없다. 실제로 남북한의 대사관 직원들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소말리아를 탈출하는 과정 그 어디에서도 살상행위가 ..

영화 삼매경 2021.08.19

[1987]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물론!

1987년은 내가 8살이 되던 해이다. 뚜렷하지 않은 어릴 적 기억 중에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는 말이 있다. 어린 내가 엄마에게 전대통령이 무어냐 물었던 기억이다. 추정컨데 '전대통령은 오늘~ 하고 시작하는 땡전뉴스를 보고 물었으리라. 어린 마음에 전대통령이라면 지금 이전의 대통령일텐데 왜 지금 뉴스에 나오냐 하는 물음이었는데 그 때 엄마의 답을 또렷히 기억한다. '그런소리 하지 말아 잡혀가'. 엄마도 농담이 아니었고 나도 무섭게 받아들였는지 그 이후로 비슷한 질문을 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만큼 컴컴한 세상이었다. 1987년의 6월, 대한민국은 박종철이라는 학생의 죽음으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직장인도, 지금은 조중동이라 희화화 되는 기자들도,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정도만 다를 뿐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시기..

영화 삼매경 2021.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