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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좀 더 미친짓을 하지 못한 자의 후회

어느날, 젊고 아름다운 베로니카는 죽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실패하고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자살기도 후유증으로 시한부의 삶이 추가로 일주일 더해진 상태에서 베로니카는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죽음을 선고 받은 상태에서 추가로 살아지는 삶은 조금 달랐는데 그것은 미친짓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녀가 있는 곳, 만나는 사람은 정신병원과 미친 사람들이 아닌가. "피아노를 연주해서 먹고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얘야" "하지만 엄마가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하셨잖아요!" "그건 오로지 너의 예술적 재능을 계발시키기 위해서였어. 남자들은 아내가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한단다. 파티 같은 데서 각광 받을 수도 있고. 피아니스트 생각은 잊어버리거라.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될 생각이나 해. 장래성 ..

[헌트] 자나깨나 이름 확인!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되면서 익숙해진 배틀 서바이벌 장르 영화다. 영화의 플롯은 기존 유사작들을 그대로 답습한다. 왜 끌려왔는지 모르는 이들이 이유 없이 습격 당하고, 개 중 가장 뛰어난 자가 반격을 가하는 이야기. 그런 뻔 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도 이런 영화가 선택을 받는 건 일반 액션과는 다른 생존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리라. 여기에 더해 알 수 없는 적에게 가하는 복수는 늘 통쾌하다. '헌트'의 초반부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전개 된다. 첫 포커스를 받은 여인이 도망을 치다 죽고, 다시 그 여인을 돕던 남자가 총에 맞고, 다시 그 남자에게 설명을 하던 다른 이들이 도망을 치거나 하는 식으로 주인공이 누구인지 흩어 놓는다. 때문에 초반부는 주인공을 찾기 위해서라도 집중하고 보게 ..

영화 삼매경 2020.05.16

[토버모리] 완벽한 타인

"그 사나이가 코끼리에게 독일어 불규칙 동사를 가르치려고 했다면 그렇게 되는 것은 모두 제 책임이지" 크로비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생활이 폭로될 대의 불안감을 다룬 명작. 영화 '완벽한 타인'의 모티브를 줬음을 백퍼센트 확신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하는 고양이 토버모리를 신기해 하지만 곧, 그 고양이가 자신들의 사생활을 너무 깊숙히 알고 있음을 알아챈다. 결국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가르친 아핀이 죽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64] 아빠로서, 형사로서 맞닥뜨리는 딜레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조직에 의지한 것이 설마 자신의 약점이 될 줄은. 복종. 피가 거꾸로 솟을 때가 있다. 미나코에게는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실종된 외동딸을 찾아낸다. 살아 있는 아이를 품에 안겠다. 그걸 위해 부모가 견디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64는 못생긴 외모를 비관해 가출한 딸을 찾고 있는 형사 아빠 '미카미'의 시점에서 바라본 며칠간의 이야기다. 지방 중소도시 경찰서에서 20년동안 형사 일을 한 베테랑인 미카미는 1년 전, 홍보부로 인사이동 당한다. 범인을 쫒지 못하는 홍보부는 무시당할 뿐만 아니라 수사 정보를 언론과 거래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어 동료로서 인정받지도 못한다. 마음만은 형사인 미카미는 홍보실을 개혁하려 하지만 그냥 경찰의 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상급자들과 계속 부딪혀온다..

[이사 그래피티]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하루키의 낭만도 다르게 보인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를 비롯해 몇몇 수필집에 실려 있는 하루키의 잡문중 하나. 잡지(관동지방에서만 파는)에 실렸던 기고문 같다. 하루키가 이사를 즐긴다는 내용과 왜 그런지에 대한 가벼운 단상이 실려 있는데 문학적으로 의미있는 단편은 아니다. 그냥 유명 작가 하루키의 자유스러움을 옅보여주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내용 자체는 별 게 없지만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1971년이란 해는 대학의 학생 운동이 일단 전성기를 넘어서고, 투쟁이 음습화되어 폭력적인 내부 투쟁으로 치닫기 시작한 아주 복잡하고 암울한 시기였지만 이렇게 돌이켜보니 실제로는 매일 여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제법 뻔뻔스럽게 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요즘 젊은 남자들이 이러니 저러니 하고 잘난척 얘기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다...

[도쿄기담집] 하루키의 지옥들

제목으로 봐서는 무서운 괴담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다. 아무리, 하루키가 시시한 괴담 따위를 쓸까보냐.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우연의 연속이 빚어낸 사건처럼 신기하긴 하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하루키의 손을 빌었기에 당연히 도시적이고 세련미 넘친다. 그런게 무려 다섯 개다. 우연이 겹치면서 누나와 화해의 계기를 마련한 게이 피아노 조율사(우연한 여행자), 서핑 중 상어에게 물려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피아니스트 이야기(하나레이 만), 26층과 24층 사이에서 실종되었다 돌아온 남자 이야기(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석 이야기를 쓰고 있는 소설가 이야기(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마지막으로 이름을 훔쳐간 원숭이 이야기(시나가와 원숭이)까지, 무엇하..

[바디: 우리 몸 안내서] 우리 몸에 대해 아는 건 삶을 경외하는 것

기존의 빌 브라이늣의 문법을 생각하고 읽었다가는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곳에서 시작해 온갖 잡학 다식한 정보들을 오밀 조밀하게 늘어 놓는다. 특유의 시니컬한 논평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빌 아저씨 답지 않게 지루하다. 아무래도 수많은 의학 용어들, 익숙치 않은 의사들의 등장, 똑바로 머리속에 그려지지 않는 몸 안의 구조들이 이 책을 보다 딱딱하게 만들었다. 물론, 의학 교양서로는 가장 대중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미생물을 항생제에 더 노출시킬수록 미생물이 내성을 갖추게 될 기회도 더 많아진다. 아무튼 항생제를 투여하고 나면 가장 내성이 강한 미생물만이 몸에 남는다. 다양한 세균들을 한꺼번에 공격함으로써, 우리는 많은 방어활동을 자극한다. 동시에 불필요한 피해까..

[쥬만지: 넥스트레벨] 드웨인과 잭 블랙의 존재감마저 삼켜버리는

대부분은 '이 영화 별로에요'에 손을 들고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그래도 이전작까지는 아이들이 좋아할만 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라도 해서 그럭저럭 보게 됐는데 이번 속편은 아이마저 외면하더라. 일단, 스토리가 어설프게 복잡해졌다. 노인들의 잃어버린 우정 되찾기라는 패턴은 아직 아이들(9세 정도)이 재미있게 받아들일만 한 요소는 아니다. 그 중 한명은 성인용 개그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전작에서 무사히 돌아와 평범한 삶을 보내지만, 게임 속의 자신 모습이 그리웠던 스펜서가 다시 쥬만지 안으로 들어가고 그런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다른 멤버들이 합류한다. 그 와중에 무언가 오류 때문에 스펜서의 할아버지와 그의 친구(지만 현재는 절교 상태)가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는 게임 속 미션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쥬만지..

영화 삼매경 2020.04.20

[유림면] 뜨끈뜨끈한 우동과 감칠맛 나는 비빔메밀면

아마,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우동과 메밀면을 파는 곳일꺼다. 국수 치고 꽤 높은 가격(8500원~9500원)때문에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막상 먹고보면 일반적인 우동과는 차원이 다르다는걸 알 수 있다. 추위에 떨다가 맞이한 우동은 국물부터 어묵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특히나 달짝찌근한 육수가 스키야기 같은 느낌이다. 비빔면도 맵고 단 것이 여러모로 부담스럽지 않게 맛있다. 돌아서면 생각나서 다시 찾을 수 밖에 없다. 회사 근처에서 벼르고 벼르다 와이프를 데려왔더니 역시나 맛있게 먹어서 뿌듯하다.

[연금술사] 마크툽, 책임감 없는 자기 회피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에 희화화 되기는 했지만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은 한 때 상태 메세지로 가장 많이 쓰였던 말이기도 하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면, 혹은 구체적 목표를 세우면 꿈에 가까워진다는 성공학의 가이드라인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색감이 들어가 있어서 젊은 층에게 공감을 얻었던 이 말은 베스트셀러 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실 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철학적인 명상서에 가깝다. 꿈을 찾아 여행하는 산티아고의 발자취를 따르기는 하지만 매 장면, 매 에피소드는 극적이라기보다는 교육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