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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동시에 두군데 있을 수 있는 남자

시작은 창대하고 흥미롭다. 플린트 시티라는 작은 도시에서 잔인한 성폭력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도 열 살짜리 흑인 소년에게. 범인으로 테리라는 모범 시민이 지목되고 그는 코치로 활동하는 야구팀의 결승전에서 수만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체포 당한다. 검사와 경찰이 이렇게 무리하게 체포한 이유는 역대급으로 잔인한 이번 사건에서 나름의 퍼포먼스가 필요했고, 모든 증거가 명백하게 캐빈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목격자, DNA, 지문까지...그러나 체포된 테리에게 명확한 알리바이-다른 도시에서 세미나에 참석했던게 방송에까지 잡혔다-가 드러나고 사건은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테리는 죽은 소년의 형에게 암살 당하고 사건은 그냥 묻히는가 했는데... 선한 의지를 가진 경찰 랠프와 테리의 변호사 하위는 이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매일 나를 응원하며

공지영의 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은근히 읽어 왔다. 청소년 필독서였던 는 말할것도 없고 , 같은 작품들도 맛깔나는 글에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작가 공지영이 작품 아닌 다른 활동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부터 조금식 편견과 함께 멀어진 듯 하다. 톡톡 쏘는 그녀의 어법, 내로남불식으로 변하는 가벼운 트윗으로 인한 일이니, 완전히 억울하다 하기는 어려울 일이다. 대중의 오해건 뭐건 간에 시작은 그녀의 손끝이었으니... 엄마는 작가이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리뷰와 블로그에 실린 엄마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된다. 가끔 터무니없는 오해와 편견으로 상처 입곤 하지. 그들과 나 사이에는 특별한 애정이라곤 없기에 그들은 엄마의 글을 엄마와 동일시하고 그리고 상..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신파는 열정의 또 다른 이름

지금 일어보면 유치하기 그지 없는 신파의 한 가닥인 소설이지만 묘한 몰입도가 있다. 전후에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서울 토박이, 김관식이 겪는 이야기다. 관식은 대한민국이 가장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그래도 어영부영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세희라는 여고생을 만난다. 첫눈에 반한 관식이지만 어째서인지 다가가지 못하고 정작 다른 친구들이 세희와 어울린다. 재필이의 용기가 관식이는 부러웠다. 그것이 설령 세희라는 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엇인가 그렇게 확실하게 살아가는 목표를 정하고 있는 것 같은 재필이의 태도가 부러웠다. 그러는 자신은 무엇인가. 친구들이 말라르메를 이야기하고 보들레르를 얘기할 때에도 그저 시큰둥하기만 했다. 마음속에 무슨 심지가 있어서 그래 너희들은 미래의 말라르메..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시체가 되살아나는 시대에서 살인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느날부터 전 세계에서 시체가 하나 둘씩 살아나기 시작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이들이 다른 인간을 공격하고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게 정설이지만 이 유쾌한 소설에서 그런 박진감 넘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이 좀비들은 잠시 되살아나서 놀라기는 하지만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고 생각하다가 몸이 완전히 썩어지면 영원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되살아났다기 보다는 유예를 받기 시작한 셈이다. 소설의 배경은 미국의 대형 기업형 공동묘지다. 이곳에서 부를 일군 스마일리 발리콘 가계의 인물들이 알수 없는 살인, 불륜, 상속따위에 얽혀가면서 사건은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클리쉐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사건에 뛰어든 이들은 시체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혼란에 빠진다. 헛수고라. 그린은 마음속으로 쓴..

[23 아이덴티티] 영화의 형식을 부수고 튀어나온 빌런

영화도 영화지만 마지막 10초는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단 10초만으로 전체 영화의 장르를 바꿔버리는 이 반전은 형식적인 면에서나 영화적인 측면에서나 전무후무한 방법. 역대 반전 영화들은 많았지만 이런 방식의 반전을 보인 영화는 이 영화가 유일하다. 마지막이 너무 충격적이라 120분간 열연했던 맥어보이의 연기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휘발되어 버릴 지경이다. 지금은 이 영화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히어로 3부작의 중간, 빌런탄생 편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보는 도중에는 이런 식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게 있다니... 아직 를 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에서 히어로를, 에서 빌런을, 에서 마무리를 지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다중인격 환자인 케빈이 세명의 소녀를 납치하는데서 시작한다. 처음엔..

영화 삼매경 2020.06.11

[언브레이커블] 히어로의 탄생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너무 충격적이었다. 스릴러물로 보이던 영화가 도중에 히어로물로 바뀌다니. 영화는 대규모 열차사고에서 홀로 살아난 데이빗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조용조용한 성격에 예쁜 유부녀에게 선을 넘지 않을 정도로 집적대는 수준의 평범한 40대(?) 남자다. 아내와는 사이가 벌어졌는지 냉랭하게 이혼 직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죽다 살아난 이번 사고로 관계가 개선된다. 이 사고는 릴라이저, 유리선생이라 불리는 인간이 저지른 것으로 영화의 종반부에 밝혀진다. 어린 시절부터 허약한 체질인 릴라이저는 뼈가 부러진 채 태어나 넘어지기만 하면 부서지는 불행한 몸을 가지고 있다. 히어로 만화에 심취한 그가 '나같은 몸이 있다면 어디엔가 강인한 히어로도 있을꺼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규모 살상 사건들을 ..

영화 삼매경 2020.06.07

[강호거상] 설명하다 죽겠다

이 지옥에서 산다면, 제일 먼저... 바로 너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악마동맹을 붕괴할 것이다. 훗훗! 그들은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자들이다. 나를 강하게 기르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나를 파멸시켰다. 그래, 그것이 바로 내가 여기에 남고자 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1세대 무협지 답게 만연체가 이어진다. 온통 설명에 설명. 상황과 설정을 설명하는데 거의 3분의 1을 이어간다. 결국에는 읽기를 포기. 악마동맹에게 길러진 주인공이 복수한다는 내용이지만 도저히 더이상은 못 읽겠다. 걸핏하면 십대, 삼대, 오대... 어찌나 설명이 많은지... 여기까지. 그만하자.

[한반도 평화 만들기] 실체를 찾기 어려운 두루뭉술함

현실세계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이들-특히 학자-일 수록 이념적인, 개념적인 차원의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정치인이 말하는 행위들, "OO 대통령은 보다 강력한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다" 같은 걸 말한다. 이 말을 한 사람이 일반인이라면 "좀 더 열심히 해 봐"라는 메세지이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저런 말을 누가 못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메세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단 좀 더 강력하다라는 메세지는 조금 부작용이 있어도 좋으니로 해석 될 수도 있고 선제적이라는 표현은 별도의 연구를 하라는 뜻일 수도 있다. 이렇게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힘의 세기는 천차만별이다. 홍석현 중앙일보, JTBC 회장이 쓴 이 책도 마찬가지다. 물론 정치인은 아닌데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

[아사코] 난폭하고 아픈 이기적 사랑

평소였다면 절대 보지 않았을 일본 영화지만 이동진 평론가의 평을 읽고 결제를 했다. 일본 불매운동 같은 건 아니고, 평소 일본영화가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아사코'를 본 이후에도 그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연기도 영상미도 수준 이하. 한국의 연기에 비해 과장된 느낌의 제스츄어는 다른 나라의 문화라 할 지라도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나름의 스타인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한국에도 잘 알려진 카라타 에리카지만 요즘 한국 스타들에 비하면 촌스러운 외모에 연기도 마뜩찮다. 저예산 영화에 가까운 영상미는 두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가 이 영화를 짚고 넘어간데는 이유가 있다. 소위 말하는 영화의 때깔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상한 매력이 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많지..

영화 삼매경 2020.05.28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영화 평론집] 1년 장기 프로젝트의 시작

기생충을 너무 맛깔나게 본데다가 여기 저기에서 기생충에 숨겨진 코드, 의미를 알려주니까 재밌더라. 그런차에 서점에서 발견한 이동진의 평론집 목차 맨 앞을 차지한 기생충이라는 제목은 앞 뒤 안가리고 2만여원을 결재하게 만들었다. 역시, 이동진의 명료하고 디테일한 해설은 책 제목처럼 영화의 두 번째 얼굴을 밝혀준다. 탁월하게 연출된 그의 작품들을 보고 나서 번져오는 무력감의 진짜 이유는 싸움의 결과가 아니라 그 싸움의 구도이다. 봉준호는 그 무력감이 지배하는 그라운드 제로의 폐허에서 다시금 이 세계의 모순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해볼 것을 제안하는 회의론자다. ('기생충'에서) 기생충 영화 구석구석에 숨은 현상을 설명하는 걸 넘어서 이 영화를 보고 드는 감정의 근원을 짚어주는 이동진의 해설은 하나의 정신분석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