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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하면서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2020년 한국 극장가가 간만에 숨통을 틔었다. 전작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어 확장된 세계관을 가지고 돌아온 좀비영화 덕분이다.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던 이 영화는 아쉽게도 전작의 아성을 뛰어넘는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렇게 참혹할정도로 못만든 영화일까? 과 별개로 바라본다면 이 역시도 다른 방식의 한국식 좀비영화의 한 축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보통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절대적인 악(惡)이자 대적자로 나온다. 간혹 악역의 인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혼자 살기 위한 이기적인 인간이거나,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기업가 또는 악당 과학자다. 에서 악인은 조금 다르다. 아마도 4년 전 부산행 사태에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을 631부대는 무참한 한반도에 갇혀 희망..

영화 삼매경 2020.08.10

[버닝] 사라진 귤은 누가 먹었을까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꽤나 난해하다. 사회의 밑자락에서 살고 있는 종수(유아인)와 해미(전종서)의 의식구조와, 상류층인 벤(스티브 연)이 이를 파괴하는 모습을 담았다. 단순하게 보면 프롤레탈리아와 부르주와의 대립과 파괴, 혁명을 그리는 일반적인 메타포로 볼 수 있겠지만 이창동 감독은 이를 훨씬 복잡한 구조로 가져간다.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입에 침이 나오면서 정말로 맛있다고 덧붙인다.(벤이라면 물론 그 방법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벤은 주위에 늘 귤이 있어서 원할 때면 언제든 집어먹으면 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마음의 돌도 직접 실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 이동진, 영화는 ..

영화 삼매경 2020.08.09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두 나라의 작가가 부르는 한일 로맨스

그와 나 자신 속에 우리가, 그의 조국 일본과 내 조국 한국의 긴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영국인 애인과 헤어질 때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을 그 말, 너희 일본 사람들... 그건 종결되지도 못하고 용서하지도 못하고 마침내 화해하지도 못한 긴긴 역사의 그늘이었다. 로 한국을 휩쓸었던 츠지 히토나리의 두번째 듀엣. 이번에는 공지영과 펜을 나눴다. 남자와 여자가 같은 이야기를 각각의 시선으로 써 내려가는 방식이라는 독특함은 지난번 에서도 보여준 바 있다. 이번에는 남과 여에 더해 한국과 일본이라는 민감한 문제까지도 글 안으로 끌어들인다. 한국 여자와 일본 남자의 만남과 헤어짐은 너무 통속적이고 평범하지만 열정적이다. 거기에 두 작가의 역사관도 엿볼 수 있는 수작이다. 내 일본어의 ..

[e스포츠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 이스포츠에 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의 조형근이 쓴 교양서다. 한때 스타크래프트를 한창 챙겨 보곤 했었는데도 조형근이라는 이름이 낮설어 찾아보니 얼굴은 기억이 날 듯 한데 경기는 한 개도 생각나지를 않는다. 미안하게도... 교양서라고는 하지만 사실 중학교 이하의 저학년 학생을 위한 소개서 정도의 수준이다. 스타크래프트를 필두로 이스포츠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화려함 이면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궁극적으로 이걸 스포츠라 부르는데에 대한 저항감을 해소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리뷰를 남기면서 이건 청소년 버전 'Why 시리즈'야 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실제로 그 시리즈에다 그 출판사다. 아.. 일종의 기획상품이구나. 내가 어릴 때 읽던 매니아층을 위한 잡학사전류의 서적들은 상당히 수준이 깊었는데...(사실 청소..

[예감] 97년, 시대를 담는 여성 작가들의 힘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박완서 / 흥타령-박재희 / 침묵속을 더듬으며-유덕희 / 꼬레-윤명혜 / 예이-이혜숙 / 훈풍-조양희 / 그건 아직도 법이 아니라 - 조혜경 / 당신의 땅 그리고 나의 땅 - 안혜성 이 책은 1997년 여성동아 문예전의 당선작들의 모음집이다. 당시에도 여성 소설가의 거목이었던 박완서를 필두로 8명의 여성 소설가들이 필력을 뽐냈다. 아쉽게도 박완서님을 제외하고는 이름들이 낮설다.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이 아니었기에 나름 성공적인 등단이었을텐데 확실히 글로 성공한다는게 쉽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젠더 갈등이 극에 달한 지금 이십여년 전의 여성작가들의 생각을 읽는 건 흥미로웠다. 50년의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산업화 전체를 살아온 중년의 여성 작가들이 시대를 바라보는 방식은 ..

[학] 전쟁 대신 학이나 몰자

아니다. 심지어 작가도 다르다. 하지만 학을 같은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배경이 같아서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이, 왜 멍추같이 서 있는게야? 어서 학이나 몰아오너라" 그제서야 덕재도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새를 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단정학 두세마리가 높푸른 가을하늘에 곧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 덕재와 성삼은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친구지만 6.25로 인해 하나는 농민동맹 부위원장으로, 하나는 국군으로 만난다. 서로 어쩔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걸 알면서 잔혹한 대립을 해야 하는 걸, 어린 시절처럼 '학이나 몰자'라는 말로 반전시킨다.

[이성과 혁명] 포기

이번 책은 오랜만에 읽는 걸 포기. 도저히 내 짧은 교양으로는 서너줄 이상 이해하는게 어렵다. 헤겔 철학의 이해로 시작하는 이 책은 무려 600쪽에 걸친 철학 이론서다. 단순한 철학적 배경을 떠나 이성과 존재, 사유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변증법으로 증명하고 있는데 행간 행간이 너무나 난해해서 전공자가 아니면 읽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범인인 나로서는 빠른 포기가 정신건강에 이로운 듯 하다.

[글래스] 새로운 오리진의 시작

또다시 예상을 뒤엎었다. 스릴러물인줄 알았지만 히어로물이었던 , 또다시 스릴러물인 줄 알았지만 의 후속작이었던 , 결말이겠거니 예상했지만 세계관을 한껏 확장시키면서 새로운 시작의 도래를 알리는 까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히어로 3부작은 하나의 완결이 아니라 스핀오프 3부작이라고 하는게 맞을 듯 하다. 극찬은 여기까지 하고, 는 전작들보다는 정적이다. 그동안 폭삭 늙어버린 브루스 윌리스는 둘째로 하더라도 대규모의 전투씬이라던지 하는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전작들 역시 말이 히어로물이지 호쾌한 액션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그리 아쉽지는 않다. 오히려 치열하게 전개되는 두뇌 싸움이 의 매력에 가깝다. 영화 제목도 -유리-인건 사무엘 잭슨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걸 대놓고 얘기해 준다. 사실상 히..

영화 삼매경 2020.06.28

[망원동 밀면집]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 싹~

아름다운 가게에 물건을 기증하고 시장이나 둘러볼까 하고는 망원시장에서 늦은 점심을 청했다.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 시원한 거 없을까 하다가 발견한 '밀면집'. 재미있게도 가게 이름이 '밀면집'이고 꽤 알려진 곳인지, 더워서인지 웨이팅이 조금 있다. 20분 정도 줄을 서고 존재하는 메뉴 전체 주문! 비빔+물+삼겹+만두까지... 만두는 평범하지만 밀면과 삼겹의 조화는 비범하다. 달짝찌근한 밀면 국물에 온몸이 시원하다. 부산에서 먹은 것과 비슷하지만 밀면이 그렇듯, 누구나 아는 그 맛이다. 부산의 맛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는게 장점이라면 장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