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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최적의 문제 해결을 위한 씽킹 프로세스] 통찰의 시대, 매뉴얼은 필요 없다

원래 일본 하면 제품을 튼튼하고 꼼꼼하게 만드는 아시아의 독일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역시 일제지'하던 말들이 적어도 내가 어릴 때에는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 붕괴와 대규모 지진, 원전사고, 코로나 같은 사태들을 맞닥뜨린 일본은 그 민낮을 여지없이 드러내게 된다. 원래 일본은 모든 일들을 매뉴얼화 해 놓고 그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런 전제적이고 관료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매뉴얼들은 업데이트를 지속해가며 완벽에 가깝게 됐고 이것들은 다시 각종 산업에서 놀라운 혁신을 일으킨다. 제대로 된 매뉴얼이 주는 힘이고 이게 일본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변화에는 취약한 모습을 보였으니 지진과 원전사고 같은 것들이 그런 일들이다. '매뉴얼'이 ..

[일연의 삼국유사] 일연이 삼국유사를 남긴 까닭

삼국유사를 일연이 쓴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일연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는 것 같다.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일연의 전기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일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가 읽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역사를 다루지 못하고 빠진 부분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몽골족의 침략으로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영광을 다시 찬아줄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몽골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죽어간 수많은 백성들의 영전에 고이 바친다. 그들의 값진 죽음이 바로 이 책을 만든 힘인 것이다. 일연은 고려 무신정권이 활개를 치던 때에 태어나 몽골의 침략 속에서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던 시기를 겪어낸다. 그 원동력이 민족의 역사라고 생각한 일연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가지..

[악의 심연] 추악함의 바닥까지

(스포 있음) 연쇄살인마의 등장은 진부하면서도 새롭다. 스릴러물에서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키포인트는 두가지다. '누구'와 '왜'. 여기에 '어떻게'가 들어가면 추리소설로 분류가 되지만 에서는 '어떻게'를 아주 적은 부분만 다룬다. 그래서 이 소설은 범죄 스릴러이다. 한 편으로는 너무나 자세한 묘사에 인상이 찌뿌려지는 것이 고어물에도 한 발을 담그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쨌거나 이 책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공포와 더불어 잔혹함, 그리고 그걸 은근스레 즐기는 가학적 성향의 발견이다. 영화 을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브롤린은 계단을 찾으면서 자신이 악의 심연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읽은 모든 것, 즉 범죄를 향해 열려 있는 악의 심연 말이다. 찢겨진 시체들..

[정직한 후보] 거짓을 말하지 못하게 된 정치인

어느날 갑자기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면?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영화에서 차용됐던 소재다. 짐 캐리의 에서는 거짓말을 못하게 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2009년에 나온 인디영화 은 아예 모든 사회가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는 걸 전제한다. 그 대부분은 악질적인 행위라기 보다는 가벼운 거짓말 - 잘 생겼어요, 언제 한 번 밥먹어요, 내가 한 때는 이렇게 성공했어 등등 - 이 대부분이라 삶을 조금 편하게 살아가는 과정 정도로 읽힌다. 하지만 정치인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는 정치인의 말을 100%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실이길 바란다. 그 달콤한 말이 진실일 때 주어질 보상이 크기 때문에..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인은 표를 바라기 때문에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일들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초심을 잃게 ..

영화 삼매경 2020.10.21

[페스트] 붕괴되지 않는 사람들

시대가 시대인것인지 2020년 하반기에 가장 인기 있는 전자책은 트렌디한 로맨스나 S/F도 아니고 해외 석학의 인문학도 아닌 80년 전에 출판 된 소설, 다. 프랑스의 한 작은 도시에서 페스트가 발생한다는 설정을 가진 이 소설은 요즘식으로 얘기하면 재난소설에 해당한다. 해서 재앙이 발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계속 사업을 했고 여행을 준비했으며, 각자 나름의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미래, 이동, 협상 등을 모조리 앗아가 버리는 페스트를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유롭다고 생각해 왔지만, 재앙이 있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장르소설의 원형 같은 이 소설은 팬데믹을 맞닥뜨린 인간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협력하고 이겨내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서른과 마흔 사이] 불안을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타이레놀

성공한 사람들의 독서목록은 당신의 독서목록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성공한 사람들만 읽는 '비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직 비서만을 찾아다니는 탓에 다른 책들은 모두 뻔한 이야기로 읽히고 마는 것이다. "30대에는 100권의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권의 책을 100번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100번쯤 읽으면 세뇌가 되거든요. 성공한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겁니다. 즉 성공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결실이 아닙니다. 성공은 이미 성공한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성취입니다." 결혼하고 놀랐던게 유난히 와이프가 가진 책 중에 성공학, 자기계발, 재테크 관련한게 많다는 거였다. 당시 서른이던 이는 아마도 자기가 옳게 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었던 듯 ..

[팬텀 스레드] 자의식 과잉을 다스리는 마조히즘

우리는 장인정신을 가진 예술가에게 경외와 존경의 메세지를 보낸다. 단 하나의 예술품, 단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기나긴 고행을 겪거나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깐깐함 등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고지식함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영화 가 관객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줬던지 기억해보자. 는 패션 디자이너를 장인의 위치에 놓고 반대편에는 연인을 올려 놓는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배치지만 장인은 완벽에 더불어 고집과 독선을 가지고 있고, 연인은 집착을 쥐고 있다. 보통의 경우에서 연인의 역할이 평범한 조력자, 영감의 원천으로 기능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사랑의 마스터피스를 노리는 또하나의 장인으로 등장한다. 1950년대 사교계 최고의 디자이..

영화 삼매경 2020.10.05

[그녀가 눈뜰 때]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고아원에 버려져 자라고 성폭행과 원치 않는 출산, 백혈병까지 걸리는 비운의 여인 서희와 그녀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고아원 운영자의 아들 세준, 세준에게 질투를 느껴 서희를 빼앗으려는 재벌가의 서자 민혁의 이야기다. 내용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전형적인 최루성 멜로 소설이다. 최루성 멜로물, 가 공전의 히트를 친게 2000년이다. 그때의 한국은 정말이지 매일같이 울고 싶었나보다. 삶에 지친 아버지의 초상을 그린 를 필두로 수많은 영화와 소설이 있는 눈물 없는 눈물을 짜내던 시기다. 아마 IMF로 인해 우울해진 세상을 눈물을 흘리지 않고 버티기 힘들었나보다. 우리는 슬픈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을 뿐이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랑일지라도. 의 작가 조창인은 97년 를..

[더블] 그저 충실하게, 뒤는 생각하지 않고

side A: 근처 / 누런 강 배 한 척 / 굿바이, 제플린 / 깊 / 끝까지 이럴래? /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 / 굿모닝 존 웨인 / 축구도 잘해요 / 크로만, 운 side B: 낮잠 / 루디 / ??(龍+龍+龍+龍) / 비치보이스 / 아스피린 /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 별 / 아치 / 슬(膝) 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작품이었다. 이렇게 재기발랄하게, 배꼽 잡게 웃기면서도 인생에 대한 고찰을 담아내는 방식은 그의 선배들보다 어깨에서 힘을 뺐지만 진중함은 뒤지지 않았다. 비슷한 세대의 김연수 작가나 김영하 작가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지만 박민규 작가는 약간은 기인처럼, 약간은 도사같은 느낌이다. 자유분방한 그의 스타일은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박민규 작가가 여..

지리산 어탕국수 - 행주산성 Only one

서너달이면 한번씩 생각나는 행주산성 최고의 맛집. 지리산 어탕국수. 매운걸 먹지 못하는 아이가 먹을만한 메뉴가 없고 시간을 잘못 맞추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쉽사리 가기가 어렵다. 합정에 생겼다기에 가봐야지 하고도 미루다가 오랜만에 시간이 맞아서 행주 본점으로 갔다. 코로나로 많이 바뀌었다. 다닥 다닥 붙은 좌식 식탁들은 의자로 싹 바뀌었고, 손님도 꽤 많다. 찜기를 공통으로 쓰던 만두 메뉴는 메기 장떡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글보글대는 어탕을 보니 무척이나 반갑다. 맛은 그대로인데 양은 좀 줄었다. 그 대신 밥을 무한제공한다고 하지만 살짝 설익은채 열로만 익어가는 꾸득꾸득한 면의 맛은 사라져 버렸다. 기다리면서 보니 합정에 있는 게 분점은 아니란다. 아마 어탕국수가 보통 명사다 보니 도용을 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