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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게임] 천부적인 이야기꾼의 보따리

인터넷 소설의 스타라는 기사를 본게 불과 몇년 전인 듯 한데 벌써 10번째 단편집이란다. 당시 김동식 작가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고 관심을 잠깐 가졌다가 잊고 살았는데 불현듯 알라딘 광고를 보고 호기심에 결제했다.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쓴 글이라 그런지 쉽고 가볍지만 한 편 한 편이 담고 있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가벼운 글을 선호하는 요즘 세대에 정말 잘 먹힐 수 있는 글들이다. 작가가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글은 철저하게 스티븐 킹의 글쓰기론을 따른다. 문체는 쉽고 간결함며 내용은 가정에서 출발한다. 만약 OO한다면으로 출발하는 그의 글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반전을 꾀하면서 독자를 탄복시키고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어 어딘가 모를 씁쓸함을 자아낸다. 한 편을 읽고 난 후에 드는..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 희망이 극복할 수 있는 건 절망이지, 암이 아니다

잭 캔필드라는 이름을 듣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101가지 이야기'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떠올렸다. 어릴 적 유행하던 잡지(지금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좋은생각'에 소개될 법한 절절한 이야기들은 감동적인데다 교육적이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쉽게 읽혀 즐겨 읽은 바 있다. 막상 지나고 나면 다 잊혀져 버리는 이야기인데도. 나이가 들어서는 종교, 명상을 강조하는 오리엔탈리즘이 눈에 거슬려 잊었다가 책장에 꽃혀 있는 걸 무심결에 빼들었다 깜짝 놀랐다. 암 환자 수기라니. 그리고 하나하나가 믿음과 신념으로 극복했다는 이야기 뿐이라 신빙성에 의문이 가는 이야기 투성이다. 물론 암 극복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는 알고 있지만 믿음과 명상만으로 극복하다니 조금 위험한거 아닐까. ..

[TV 피플] 불안한 현대인

TV 피플 / 비행기-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하였는가 /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고도 자본주의 전사 / 가노 크레타 / 좀비 / 잠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단편 선집이다. 젊은 시절의 하루키는 무척이나 날카롭고 염세적이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마치 마약에 취한 것처럼 몽환적인 느낌의 표제작인 은 무력함에 빠진 현대인을 관능적으로 그려냈다. 아마 소설이 미술이라면 하루키는 칸단스키일꺼다. 수많은 기호를 이용해 또렷하게 그려낸 환상들. 이상하게도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어떤 색깔이 느껴진다. 무서워할 것 없어, 유령은 아무 짓도 할 수 없으니까. 목을 틀림없이 잘라 두었고, 피도 다 뺐어. 자지도 세울 수 없다고 가학에 가까운 묘사도 하루키의 펜을 거치면 기호학이 되어 버린다. ..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인디아나 존스 대신 따뜻한 고고학자는 어떨까?

우리는 모두 고고학을 꿈꾼다. 인디아나 존스나 라라 크로프트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땅을 파헤쳐 잊혀진 과거를 발견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어린 아이들이 보물을 찾겠다며 땅을 파는 행위만 보더라도 고고학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건 인간의 DNA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그 관심에 비해 유명한, 아니 대중화 된 고고학 서적이 적은 건 실제 고고학과 꿈 속의 고고학의 괴리가 너무도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영화나 책에 등장하는 고고학 이야기는 흥미롭고 신나지만, 실제의 고고학 발굴 작업은 긴 시간을 들여 끈기 있게 유물을 관찰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일반인들의 눈에 비치는 실제 고고학자의 모습이 짠내 가득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대중에게 가까운 편..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디즈니가 제3세계를 다루는 방식

디즈니는 원래부터 다양성에 관심이 많았다.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예전부터 흑인 공주를 등장 시키거나 뮬란처럼 동양인을 주인공으로 쓰는 경우들이 있었다. 모아나와 알라딘의 히트 이후에 자극을 받았는지 이번에는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애니매이션을 냈다. 결과적으로는 흥행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시대에 맞는 적절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채색을 바탕으로 하는 이국적인 모습도 마음에 들었고. 라야가 있는 쿠만드라 왕국은 원래 드래곤들과 어울려 살았지만 '드룬'이라는 악의 세력이 들이닥치자 드래곤들은 자신들을 희생하여 드룬을 봉인하고 자신들도 잠에 빠진다. '드룬'은 생명체들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공포의 대상이다. 다행히 드래곤들이 남긴 보석으로 쿠만드라는 평화를 유지 할 수 있었지만 세월이 많..

영화 삼매경 2021.04.28

[아주 오래된 농담] 나쁜 관습에 대하여

제목에 농담이 들어가지만 이 농담은 결코 재밌지 않다. 여기서의 농담은 우스개소리가 아니라 자조의 표현이며 허무의 기억이고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를 바라보는 남자의 자포자기한 심정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의사인 영빈이지만, 한쪽 뇌리에 박혀있는 기억이 있으니 시간이 지나도 또렷하게 남아있는 한 발칙한 여자아이, 현금의 기억이다. 너 커서 뭐가 될래? 그건 어릴 적에 누구나 흔히 듣는 질문이고, 더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어른들의 심심파적일 따름이다. 아이들은 운전수, 교통순경, 로봇, 군인, 가수, 사장, 대장, 텔런트, 판사, 박사, 과학자 등등 수없이 말을 바꾸어도 일일이 기억할 필요도, 책임질 필요도 없었다. 어디서 현금은 기억하고 있을까. 어릴 적 무심히 내보인 한 치 혀가 한 사내를 특정 ..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결핍 연인의 사랑 방법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헝가리의 영화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인지 헝가리의 모습이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게 꽤 색다르다. 이 영화는 두 남녀가 우연찮게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반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계기가 무척이나 색다르다. 먼저 남자주인공인 안드레는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일터인 도축장에서 사고를 당한 것 같다. 나름 회사에서는 고위직이지만 작은 공장의 사장 정도라 소탈하고 추례한 이미지다. 사고 때문에 이혼을 한 것으로 보이며 회사 외에는 집에서 TV를 보면서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남자. 그가 일하는 도축장에 품질관리원으로 르벨리라는 여성이 배정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여성은 도축된 고기에 등급..

영화 삼매경 2021.04.22

[세번째 살인] 살인도 결국 일상의 한 장면인가

오래전 한 사람을 죽였고, 다시금 또 한 사람을 죽이게 된 그는 이제 스스로를 죽이려고 한다. 그게 이 영화 제목이 '세 번째 살인'인 이유다. 일본영화는 참 맛있으면서도 손이 안간다. 한국과 가까운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이 주는 매력 반면에 차양막을 한번 가린 것 같은 연출이 늘 마음에 걸린다. 언어가 주는 장벽만이라기에는 너무 이질적인 감정이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스릴러라 하기에는 잔잔하다. 우리가 아는 법정물과도 다르다. 살인을 자백한 미스미를 변호하는 시게모리팀의 세명은 변호사라기 보다는 샐러리맨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그려지는 법조인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어쩌면 저쪽이 실제에 가까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상이 아닌 영화를 보기를 바란다. 이 영화에서 미스미는 계속해서 말을 뒤집..

영화 삼매경 2021.04.11

[구덩이] 착한 성정이 가문의 저주를 풀어내는 이야기

오랜만에 만난 괜찮은 소설이다.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우연, 신비로운 운명론적 설정, 소년의 성장, 모험과 극복 그리고 우정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소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고조 할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람에 대대로 지독하게 운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스탠리는 운동화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소년원 캠프에 갇혀서 매일 구덩이를 판다. 단순히 벌이라기에는 뭔가 목적이 있는 듯한 구덩이 파기는 사실상 소년 교화를 명분으로 한 보물찾기였다. 스탠리는 몇가지 사건과 함께 캠프를 탈출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보물을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저주를 풀어낸다. 모두 스탠리가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면서 ..

[엘리트 세습]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기본 소득이 이슈가 되는 건 비단 우리나라의 상황만도 아니고 코로나가 불러일으킨 특수한 상황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중간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나 뿐은 아닐 것이다. TV 광고에서 중소기업은 보이지 않고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벌이는 최소한 대기업 초봉 이상의 급여 소득자에 국한된다. 우리나라에서 그정도 급여 소득자라는게 상위 10%라는 믿기지 않는 사실과 함께 우리 사회는 분열되고 있다. 때문에 소외된 나머지 90%는 더이상 이 간극이 노력으로 메꾸어지지 않음을 알고 기본 소득을 요구하고 나섰다. 산업 전반에서 고도로 숙련된 상위 근로자들이 중간 숙련도를 갖춘 중산층 근로자들을 경제 생산의 중추에서 밀어냈다. 모든 경제부문을 통틀어 혁신 때문에 중산층 직종이 소수의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