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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부터의 탈출' - 식민지는 강압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다

외계 종족 프록스의 식민지가 된 지구. 과거 우주에서 몰려온 이상 물체들을 향해 지구는 한 몸이 되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들 - 핵무기를 포함해 - 을 쏘아 올렸다. 1차 공방에서는 패배했지만 아직 지구는 무기가 남아있었고 자유를 위해 희생하려는 수많은 영웅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다른 외계 종족, 프록스들이 찾아와 지구의 적을 격퇴하고 동맹을 맺기를 요구했다. 지구는 외계 종족과의 전쟁의 불확실성보다 우호적인 프록스와의 동맹을 선택했지만 동맹과 동시에 그들은 지구에 구획을 가르고 빠르게 식민지화를 시작했다. 그것이 효율적이고 과학적이라면서. "우리를 갈라놓기 위해서지. 조그만 조각들로 갈라서 구역마다 고립되도록. 통제하고 제한하기 쉬우니까. 문명을 지으려면 거대한 사회의 힘, 협력, 정보교환이 필..

'2015년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 한강, 눈한송이가 녹는동안 外

한강 -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 한강 - 에우로파 / 강영숙 - 맹지 / 권여선 - 이모 / 김솔 -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 / 김애란 - 입동 / 손보미 - 임시교사 / 이기호 -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 정소현 - 어제의 일들 / 조해진 - 사물과의 작별 / 황정은 / 웃는 남자 2015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먼저 세월호 사건의 다음 해라는 게 떠오른다. 전 국민이 입은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양 진영으로 나뉘어 그야 말로 더러운 정치공방이 이어지던 해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죽음에는 눈을 가린 채 정치적인 메시지로만 날을 세우던 때였다. 연말에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나왔고. 우리는 이 한 해의 문학상을 통해 2015년의 분위기를 다시 읽어낼 수 있다. 이 해의 황순원 문학상은 한강 작가에게..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세지다.' - 매일 업데이트가 필요한 세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의 흐름을 보는 송길영 대표의 신작이다. 몇 년에 한 번씩 비슷한 책을 내 왔지만 코로나를 거친 지난 2년 동안의 세상 변화를 겪었기에 훨씬 중요한 사회적 흐름이 담겨 있다. 과거에는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했다면 지금은 현재의 데이터 흐름을 가지고 미래를 보기 때문에 훨씬 정확하다. 그래서 더 무섭고. 송길영 대표는 이 책의 대부분을 세상의 변화했음을 증명하는데 쓰고 있다. 세상은 이제 인간을 노동의 영역에서 밀어내는 쪽으로 가고 있으며 어쩌면 노동 자제가 소멸할 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도태되고,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현행화, 즉 세상의 기준에 스스로를 계속해서 맞춰나가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는 관리자가..

'제5도살장' - 뭐 그런거지

핵무장 해제의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면 전쟁이 견딜 만하고 품위 있는 것이 되리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 책을 읽고 드레스덴의 운명을 깊이 생각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재래무기를 이용한 공중 공격의 결과로 135,000명이 죽었다. 1945년 3월 9일 밤에는 고성능 소이탄을 이용한 미국 중폭격기의 도쿄 공중공격으로 83,793명이 죽었다.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탄은 71,379명을 죽였다. 2차 세계 대전의 모든 전투가 그렇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지옥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던 곳이 바로 드레스덴이다. 아마 공격자가 연합군이고, 폭격지가 독일이어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전쟁에서 독일이 항복을 선언한 게 저 멀리 일본에 떨어진 핵 때문일 리는 없지 않나. 이 작은 공업도시..

이것도 김치찌개라니 - 신촌 고냉지 김치찌개

영화를 보러 나갔다가 주변 맛집으로 찾은 김치찌개집. '고냉지'라는 그럴싸한 이름과 노포 느낌 나는 인테리어는 공을 들였지만 정작 김치찌개는 별로다. 배추는 신선한데, 전혀 익지 않은 생김치. 요즘 사람들은 생김치로 찌개를 먹나보지?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계란말이도 다른 곳과 다른게 아니고, 정작 중요한 김치찌개가 김치국이니.. 도대체 여긴 왜 맛있다고 하는거야? 따뜻한 햇살 비치는 창가 담벼락 느낌이 좋기는 하다만...

'한라산의 노을' - 제주 4.3의 진실은 어디 있는가

제주 4.3,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저 근현대의 아픈 상처로 남기기에는 희생자의 수가 너무 많다. 그 작은 섬 제주에서 무려 6만이 죽어야 했으니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결코 홀로코스트에 뒤지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제주에서 일어났는가, 여수와 순천까지 번진 이 대학살은 도대체 어떤 배경이 있는가. 1991년 발표한 '한라산의 노을'은 숨기기 급급했던 제주 4.3 학살을 가장 사실에 가깝게, 편중되지 않은 시각으로 써 내려간 르포 형식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실제 인물들에 하나하나 접근해서 각각의 시각으로 4.3 사건의 실체를 탐구한다. 제주 사름덜은 오죽 서로 간의 의논을 잘한다고. 잠수들은 불턱(제주 해녀 전용 바닷가의 야외탈의장)에서 밭일하는 아낙네들은 수눌음에서, 일상 하는 게 의논하는 거 아닌가. ..

'식탁 위의 한국사' - 오래 된 것이 아니라 지금 대중이 먹는 것이 한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먹는'행위는 단순히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맛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 데코레이션까지 포함해 하나의 음식을 소비하고 있으며 세계 곳곳의 문화를 받아들여 재해석하는 한국의 음식은 또 다른 문화 상품이 되었다. 흔히들 한식 하면 비빔밥, 잡채, 불고기를 떠올리지만 정작 그 음식들을 한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거 궁중에서나 먹던 고추장이 서민의 식탁에 오른 지 백여 년을 넘겼을 뿐인데? 한식 문화를 끈질기게 연구해 온 주영하 교수는 한식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가게에서 음식을 팔기 시작한 때의 음식이 곳 그나라의 식문화라 정의한다. 집에서 해 먹는 건 어느 국가나 있는 부분이고 그것이 독창적인 지역의 음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설렁..

'경솔한 여행자' - 시간 여행 패러독스

지금이야 타임슬립 이야기가 차고도 넘쳐서 타임 패러독스라는 용어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숙하다. 이 간단한 논리적 모순을 헤쳐나갈 방어 도구 없이는 아무리 장르물이라 해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게 요즘의 타임슬립 물이다. 그런데 도대체 1944년, 식민지 조선이 해방되기 전 해에 출간된 이 소설이 가진 그로테스키함과 과학적 혜안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피에르는 자기 조상이 아내를 맞이해 아이를 가질 시간을 갖기도 전에 그를 죽였다. 그러니 피에르는 사라졌고, 그건 당연하다. 그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다. 피에르 생느무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좋다. 하지만 만일 피에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한 적도 없다면, 자신의 조상을 죽일 수도 없었던 것 아닌가! 이 소설은 타임 슬립을 다루고 ..

더 배트맨: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배트맨 시리즈의 다크함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배트맨의 탄생 자체에 惡에서 기인했다는 설정을 들고 나와 훨씬 더 복작하고 어두운 배트맨의 이면을 보여 준다. 덕분에 로버트 패틴슨의 아름다운 외모에 쏠린 초점을 충분히 분산시킬 수 있었다. 오히려 인간적 나약함을 나타내기에는 패틴슨이 더 적합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배트맨은 강도를 당한 부모님의 복수를 계획하고, 거대한 고담의 악에 맞서는 히어로였지만 그 배경에는 존경받는 부모와 그에 적합한 부를 가졌다는 면에서 완전무결한 영웅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부모 역시 한때 악에 굴복했으며 나아가 고담이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나타나면서 도덕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배트맨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영화의 주제로 드러난다...

영화 삼매경 2022.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