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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 국뽕이 더해진 첨보 액션 킬링타임 소설

최근에는 뜸하긴 하지만 예전에는 이원호 작가를 필두로 하는 '킬링 타임용 마초 소설'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었다. 이른바 소설계의 김성모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지금은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주로 첩보 액션물로 국뽕에 약간 성적인 이미지가 가미되는 편이라 큰 의미를 두고 읽을 건 아니지만 또 목적(?)에 맞게 한 번 잡으면 금방 몰입이 되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킬링 타임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아주 걸맞다. 는 한국 특수부대원 출신의 이준석 대위가 주인공이다. 아랍의 테러단체에 납치당한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혈혈 단신으로 이집트에 뛰어든다. 일본에서 개발한 비밀무기를 탈취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인데 덕분에 이준석은 국제적인 첩보전에 휘말리는 뻔 한 스토리다. 모두 실패했다. 그렇게 자위하려고 ..

[완전한 행복]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극 초반에 나오는 '노아'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서야 이 소설의 모티브를 깨달았다. 아. 정유정은 그 끔찍한 사건을 파헤치고 싶었구나. 예전 에 그녀가 등장했을 때 자신은 '왜' 를 탐구하는 작가라고 했다. 일반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에게 '왜'라는 잣대를 들이대어 적어도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정유정의 글쓰기 방향이다. 악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은 화자가 아니다. 단 한 번도 이야기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입에 지퍼를 채워 커튼 뒤에 세워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전작에서도, 작품 안의 여러 방식에서도 드러나는데 등장인물 주변의 관찰자들을 통해 디테일하지만 파편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그것들을 독자 머리속에서 재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마지막까지 믿어야 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이름만 보고 진작에 사 놨지만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말에 몇년간 묵혔다가 이제야 찾아 읽었다. 다섯편의 단편이 서로 연결되는 액자식 구조를 가졌는데 가벼운 반전도 볼만 하지만 다섯 편을 쭉 읽다 보면 묘한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냥 '감동적인 소설이야~' 라고 하기에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준다. 불투명한 미래, 불안한 현실을 고민으로 남기면 답변이 오지만 그걸 선택하는 건 전적으로 고민하는 자의 몫이다. "아니,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이 사람도 자기 얘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거야. 별로 대단한 충고는 못해주더라도,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건 충분히 달 알겠다. 어떻든 열심히 살아..

[인질] 투박하고 우직한 웰메이드 오락영화

‘인질’은 투박하면서도 우직한 영화다. 납치당한 유명인의 탈출 이야기라는 단순한 구조지만 쉴 새 없이 전개되는 장면 장면이 신선하다. 먼저 황정민이 본인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부터 심상치 않다. 영화배우 황정민이라는 이름은 여타 부연 설명 없이도 관객을 고스란히 몰입시킨다. 그야말로 괴리감이 0인 연기. 그리고 지존파를 연상케 하는 다섯명의 범인도 구태의연한 배경 설명이 없다. 모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선한 캐릭터들임에도 ‘그냥 악당’이라는 공식에 딱 걸맞는다. 어거지로 사연을 만들지 않아 관객은 ‘배우 황정민’과 ‘악당 다섯’의 대결을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볼 수 있어서 오락 영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중간 중간 보이는 살벌한 개그들, 황정민에게 유명한 대사를 시키거나(드루와 드루와) 박성웅이 ‘..

영화 삼매경 2021.08.24

[씽크홀] 코미디도 일관성이 있을때 빛나는 법

내심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씽크홀이라는 대형 사고를 이토록 가볍게 다루는 연출이라니… 영화 ‘씽크홀’은 어느날 갑자기 씽크홀로 빨려 들어간 서민들의 이야기다. 11년만에 내집 장만에 성공한 김성균을 필두로 금수저 동료에게 짝사랑을 빼앗기는 이광수, 월세사는 싱글대디 차승원까지 서민들이 모여사는 빌라 한 동이 통째로 씽크홀에 빠지게 되는데 도대체가 장르가 정리가 안된다. 비슷한 영화로 ‘엑시트’가 있지만 코미디라고 다 같은 코미디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맥락 없는 코미디를 하면서 어설픈 주제의식과 메시지를 담으려 하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었다. 등장인물의 연기에도 문제가 있다. 분명 내공이 탄탄한 배우들이건만 연출자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이 안된 건지 예능과 영화 사이에서..

영화 삼매경 2021.08.23

[블랙 위도우] 구태의연한 구성으로 긴장감 없는 헌정 영화

코로나 이후 첫 개봉한 마블 작품이라 큰 기대를 했는데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 온 블랙 위도우의 유일한 단독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맥락과 설정, 대립구도 등에 있어서 이전 마블 영화보다 퇴보한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특수한 능력보다는 강인한 특수부대원 정도의 위치에 있는 블랙 위도우의 능력치를 고려한 설정이겠지만 빌런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전 우주적 차원의 전쟁을 보고 난 직후여서인지 영화가 전반적으로 나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빌런 역시 구태의연한데 10여년 전 나왔던 캡틴 아메리카와 하이드라의 대결 구도와 차이가 없는 데다 블랙 위도우가 캡틴 아메리카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대체하지 못하면서 그저 그런 액션물로 전락했다. 대부분의 ..

영화 삼매경 2021.08.20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이 보여준 놀라운 인내력의 승리

최근 나온 영화 중 가장 핫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모가디슈다. 류승완 감독과 김윤석, 조인성 라인, 실화 배경, 남북한, 소말리아(실제 촬영은 모로코지만)라는 독특한 배경까지 일단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는 흥행 공식을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아프가니스탄 함락이라는 시대적 이슈까지 중첩되어 더욱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다. 이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연출을 보여주는데 류승완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액션 파트조차 상당히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영화적 허용 정도로 인식하는 비현실적인 총격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민간인 신분인 출연자의 설정을 깨뜨리는 그 어떤 액션도 없다. 실제로 남북한의 대사관 직원들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소말리아를 탈출하는 과정 그 어디에서도 살상행위가 ..

영화 삼매경 2021.08.19

[인스티튜트] 확률의 제단에 아이들을 바치는 연구소

다시, 스티븐 킹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젊은 시절의 재기발랄함은 없지만 차곡차곡 쌓아올려가는 이야기 구성능력은 여전하다. 이 소설은 전형적인 음모론 클리셰를 따르고 있다. 인류 중 일부가 타고나는 미약한 초능력자와 이들을 이용한 국가 정보세력. 이 과정에서 짓밟히는 소수 초능력자들의 인권과 그들의 반란까지. 인구의 0.5퍼센트도 안 되는, BDNF가 아주 높은 소수의 사람들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축복받은 행운아였다. 핸드릭스의 말로는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했을 때 의도하신 바가 그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기억력 저하나 우울감이나 신경병증성 통증을 거의 겪지 않았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유발하는 극단적인 영양실조나 비만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사회성이 뛰어났고 문제를 일으키기보다 해결하는데 능하..

[이기적 유전자] 이기적인 자기복제자

과연 신은 있는 걸까? 인간은 왜 사는 걸까? 삶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인지와 이성을 갖춘 그 순간부터 인간은 이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고 지금까지도 많은 철학자, 과학자, 신학자들이 연구와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론자 석학인 리처드 도킨스가 무려 1976년,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근원과 삶에 대한 답을 내 놓았고 아직까지 그 이론을 뒤집는 연구는 나오지 않았다. 유전자의 특성은 자기복제자, 모든 생명의 근본적인 단위는 유전자이며 자기복제에 원동력이 있다. 에서 인간은 수많은 진화 결과 중 하나에 불과한데 요행이도 이성과 문명을 쌓아 올릴 수 있었던 존재에 불과하다. 이 책 이전까지 진화생물학은 단위 개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예를 들면 높이 있는 먹이를 위해 기린 목이 길어졌..